[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전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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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전복(鰒魚) 상납’에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현종 5년(1664년) 11월, 대사간 남구만이 탄핵상소를 올린다. 대상은 당대 실권자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1619∼1675년). 보통 권력자가 아니다. 현직 임금의 장인, 왕비의 친정아버지다. 나중 이야기지만 외손자가 숙종이다.

통제사 김시성이 김우명의 집에 전복을 보냈다. 김우명은 이 전복을 궁궐에 보낸다. 문제는 후임 통제사 정부현이 이 일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이다. 남구만이 탄핵한다. “이런 사사로운 진상이 한 번 시작되면 뒤 폐단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전복 상납은 국가 체모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청풍부원군 김우명을 추고하소서.” 임금 장인의 잘못을 잘 따져보라는 것이다. 현종은 탄핵을 받아들인다. 김시성은 파직된다(‘조선왕조실록’).

전복은 충청, 호남, 제주, 경상 전 해역에서 생산되었지만 전복을 구하는 것은 힘들었다. ‘하루 종일 물속에서 일을 해도 전복 한두 마리 구하는 게 고작’일 정도라는 기록도 있다. 전복 공물로 인한 폐해도 많았다. 중앙에서 전복 매입 대금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면 중간에 공금이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전복 값을 제대로 주지 않으니 결국 민간에 폐가 되었다. 큰 전복을 따러 외진 바다로 나갔다가 왜구를 만나 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귀하게 구한 것이니 귀하게 사용했다. 1452년 5월, 즉위 2년 차의 문종이 세상을 떠났다. 이날의 왕조실록은 문종을 애도하면서 아버지 세종에 대한 문종의 효성스러운 마음을 기록한다. ‘세종이 일찍이 몸이 편안하지 못하므로 (문종이) 친히 복어(鰒魚)를 베어서 올리니 세종이 맛보게 되었으므로 문종이 기뻐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문종이 아버지 세종에게 올린 ‘복어’나 상납사건의 ‘복어’는 모두 전복(全鰒)이다. 생선 복어는 ‘하돈(河豚)’이고 복(鰒) 혹은 복어(鰒魚)는 전복이다.

전복은 탈도 많았다. 상한 전복을 공물로 진상했다가 해당 지역의 관리가 징계를 받고, 궁중에서 ‘전복 도난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명종 1년(1546년) 5월, 참찬관 송세형이 ‘사옹원에서 전복 도둑맞은 일’과 그에 따른 군사들의 형벌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사옹원의 주요 임무는 궁중의 식재료 관리다. 송세형은 사옹원 전복 도난사건으로 5∼6년간 근무했던 입직군사들이 세 번이나 형벌을 받았는데, 그 과정이 뭔가 의심쩍다고 주장한다. ‘전복 도난사건’에 대한 추가적인 기록이 없으니 상세한 내용은 알기 힘들다.

전복 종류도 다양했다. 껍데기가 붙어 있는 ‘유갑생복(有甲生鰒)’, 건조한 ‘건복’, 반쯤 말린 ‘반건전복(半乾全鰒)’, 살아 있는 ‘생복(生鰒)’, 익힌 ‘숙복(熟鰒)’, 그리고 염장한 전복도 있었다. 전복 조림인 전복초(全鰒炒)와 전복죽, 전복만두를 비롯해 요리법도 다양했다. 허균은 “제주에서 생산되는 ‘큰 전복(大鰒魚)’이 가장 크다. 맛은 작은 것보다는 못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매우 귀히 여긴다. 경북 해안 사람들은 전복을 꽃 모양으로 썰어서 상을 장식하는데 이를 화복(花鰒)이라 한다. (전복) 큰 것은 얇게 썰어 만두를 만드는데, 역시 좋다”고 했다(‘성소부부고’).

민간에서도 전복을 귀하게 사용했다. 조선 후기 유학자 갈암 이현일은 유학자 하홍도의 삶을 기록하면서 “(하홍도의 아버지께서) 병이 위중할 적에 복어(鰒魚)를 먹고 싶어 했는데, 미처 맛보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하홍도는) 이를 지극한 한으로 여겨 평생토록 이 음식을 입에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복은 효도의 상징이기도 했다.

제주에서 관리를 지낸 기건(奇虔)은 “백성들이 전복을 바치는 것을 괴롭게 여기니,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전복껍데기인 석결명(石決明)은 약재로도 사용했다(‘해동역사’). ‘결명’은 두 종류다. 초결명(草決明)은 식물 결명자 씨앗이다. 안질 등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돌같이 생긴 결명’이 바로 석결명, 전복껍데기다. 눈을 밝게 하고 혈압을 낮춘다고 믿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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