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황광해 씨의 글을 연재한다. 황 씨는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고 한식의 장(醬)에 관심이 깊다. 채널A ‘착한식당’, KBS ‘한국인의 밥상’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맛집 579’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
임진왜란이 막 끝났다. 광해군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가난한 나라의 임금이다. 도성 내 모든 궁궐이 무너졌다. 임금의 거처도 마땅치 않다. 겨우겨우 전세살이로 들어간 곳이 월산대군의 사저였다. 살 곳이 마땅치 않은 판에 먹을거리라고 넉넉했을까?
‘잡채상서(雜菜尙書)’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왔다. 임금에게 잡채를 올리고 높은 벼슬을 얻었다는 뜻이다. 잡채만 있었으랴? ‘김치정승(沈菜政丞·침채정승)’, ‘사삼각노(沙蔘閣老)’도 있었다. ‘사삼’은 더덕이다. 김치, 더덕 반찬을 바치고 높은 벼슬을 얻었다는 뜻이다. ‘사삼각노’는 광해군 때 판중추부사를 지낸 한효순이고 ‘잡채상서’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충(李沖)이다. 고위직들이다.
이충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다. 우선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 할아버지 이양(李樑)은 이른바 권간(權奸)으로 명종 시절 탄핵받았던 인물이다. 간신의 자손이니 벼슬길이 힘들다. 그런데도 호조판서까지 하고 사후 우의정으로 추존되었다. 벼슬길 내내 말이 많았다. 할아버지 이양과 이충은 안티세력이 많았다. 명종 선조 광해군 시대의 기록을 보면 군데군데 이충과 조부 이양이 “속이 좁은 소인배이며, 권문세가에 줄을 대고, 지방관리로 있을 때 탐학했다”는 탄핵이 줄을 잇는다. 이충에 대해서 안티세력들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잡채상서’였다. 실력도 없으면서 잡채 바치고 벼슬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잡채상서 이충’에 대해서는 ‘상촌집’이나 ‘연려실기술’ 등에도 그 내용이 나온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조선 중·후기에는 이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해군은 이충의 집안에서 반찬 등 음식이 오지 않으면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충 집안의 음식 솜씨가 좋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물 김치 더덕 등 흔한 재료를 사용했음을 보면 진기한 재료보다는 음식 솜씨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잡채(雜菜)’는 1670년경 저술된 안동 장씨 할머니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 상세한 레시피가 나온다. 오이채 무 참버섯 석이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숙주나물 도라지 마른박고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시금치 동아 가지 등이 재료다. 고기는 꿩고기를 사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레시피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모든 식재료들은 반드시 가지가지 것을 다 쓰라는 말이 아니고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있는 대로 하여라”라고 적었다.
잡채는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채소 모둠’이다. 딱 정해진 재료는 없다. 구할 수 있는 여러 채소를 구해서 만들면 잡채다.
잡채는 일제강점기 초기 환골탈태한다. 당면(唐麵)은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다. 우리는 중국을 ‘호(胡)’ 또는 ‘당(唐)’으로 불렀다. ‘호’는 청나라, 오랑캐 등 부정적인 면이 강하고 ‘당’은 긍정적인 냄새가 강하다. 호빵, 호떡은 오랑캐, 청나라산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당면은 긍정적인 ‘중국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당면은 1910년대 중국에서 건너왔다. 중국인, 일본인들이 당면 공장을 운영하다가 어느 순간 사리원의 한국인들이 당면 공장을 세웠고 업계의 선두자리를 차지했다.
동아일보 1933년 10월 1일자 기사에는 ‘사리원 동리의 당면창고(주인 양재하)가 전소했다. 화재 원인은 별관에 머물던 종업원들의 실화, 손해액은 1천 원 상당’이라는 내용이 있다. 1935년 2월의 기사에는 ‘한반도의 당면 생산량이 60만 근인데 대부분 일본 도쿄, 오사카 등으로 수출한다. 우리 당면이 중국산보다 질이 좋다’는 내용도 있다. 광복 후인 1946년 3월 18일자에는 ‘서울풍국제면소의 당면이 대용식량으로 공급된다’는 내용도 있다.
당면은 일본인들이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간장과 더불어 잡채에 스며든다. ‘당면잡채’다. 궁중음식도, 우리 음식도 아니다. 나라가 망하고 난 후에 들어온 식재료, 당면이 주인 노릇을 하는 당면잡채는 한식의 아름다움을 살린 음식은 아니다. 채소 맛으로 먹어야 할 잡채가 당면과 조미료, 감미료 범벅의 간장 맛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제 만나기 힘든 ‘채소 모둠 잡채’는 경북 영양군의 ‘음식디미방 기념관’에서 예약하고 만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