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러시아 국가 가사가 두 번 바뀐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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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월드컵 개최국인 러시아가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누르고 8강에 진출했군요. 16년 전 우리나라가 그랬듯 러시아 전체가 흠뻑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을 듯합니다. 4강전이나 결승전에서도 러시아 국가를 듣게 될까요?

러시아 국가라고 하면 음악팬들은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이나 ‘슬라브 행진곡’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관현악곡들 뒷부분에 러시아 국가가 장엄하게 등장하니까요. 하지만 그 러시아 국가는 러시아 혁명과 함께 폐기된 제정 러시아의 국가입니다. 오늘날의 러시아 국가는 어떤 곡일까요? 이 곡의 선율은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가 1939년 공산당 당가로 작곡했고 1943년부터 소련 국가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가사는 이후 두 차례나 바뀌었습니다. 그 기구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국가의 작사가인 세르게이 미할코프(사진)는 동화 작가이자 극작가였는데, 스탈린이 그의 작품을 좋아한 나머지 그에게 국가의 작사를 명령했습니다. 미할코프는 독재자의 구미에 맞게 그를 칭송하는 내용을 붙여 가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죽고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지자 이 가사는 시대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소련 당국의 선택은 ‘가사 없이 연주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0여 년이 지나 1977년에야 스탈린에 관한 표현이 삭제된 새 가사가 이 선율에 붙여져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가사도 이미 64세가 된 미할코프가 새로 쓴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 러시아연방의 국가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들은 사라진 소련의 국가를 그리워했고, 2000년 대통령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은 옛 소련 국가를 되살려 새 러시아 국가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가 새 가사를 붙일까요? 러시아인들은 시골에서 안온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던 미할코프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는 이미 87세였지만 기꺼이 러시아의 새 국가를 썼습니다.

미할코프는 2009년 96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러시아가 2018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되기 한 해 전이었습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러시아 국가#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세르게이 미할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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