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라보엠’ 여주인공 미미는 당돌? 청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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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매년 그렇듯이, 크리스마스이브가 배경인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푸치니(사진)의 오페라 ‘라보엠’이 전국 곳곳에서 공연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라보엠’에서는 미미가 촛불을 불어 끄도록 하는 연출이 많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1막에서 여주인공 미미는 자취방을 비추던 촛불이 꺼지자 초를 들고 같은 건물에 사는 시인 로돌포의 방으로 불을 붙이러 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미가 멀쩡하게 불 켜진 초를 들고 가다 로돌포의 방문 앞에 와서 초를 훅 불어 끄는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사소한 차이지만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큽니다. 미미가 로돌포의 방 앞에서 초를 껐다면, 단지 이웃에게 불을 빌리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미는 적당한 구실을 붙여 로돌포를 ‘찾아간’ 것이고, 미리 로돌포를 점찍어 둔 게 됩니다. 적극적이고 ‘당돌한’ 여인입니다. 적절한 모습일까요?

이 오페라의 원작인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들의 생활 정경’에서 미미는 파리 라탱 지역의 대부분 젊은 여성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연애는 젊고 멋진 예술가들과 하고, 나이 들고 부유한 남자들에게서는 용돈을 챙기는 여인들 중 한 명이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돌한’ 미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불이 꺼진 척하는’ 미미에 반대입니다. 그렇게 적극적인 미미는, 푸치니가 선율과 반주부에 깔아놓은 연약하고 바스러질 듯한 이미지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푸치니는 대본작가들에게 미미를 ‘청순무구’한 여인으로 그리도록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가 죽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미미에게 투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푸치니의 어머니는 의지가 강하고 과감한 여인이었지만, 푸치니가 데뷔작 ‘빌리’로 성공을 거둔 직후 암에 걸려 촛불이 꺼지듯이 쇠약한 상태로 죽어 갔습니다. 이후 처음으로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여인을 오페라에 등장시킨 푸치니는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들을 떠올렸고, 이 주인공을 순수의 화신으로 그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연말입니다.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도, 부모님께도 기쁨 드리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유윤종 gustav@donga.com
#라보엠#푸치니#호두까기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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