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 당신 곁엔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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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별 하나가, 당신이 그쪽을 향해 가고 있는 별 하나가 있군요. ―나자(앙드레 브르통·민음사·2008년)

1926년 10월 4일. 소설가 앙드레 브르통은 파리의 한 거리에서 초라한 차림의 젊은 여인과 마주쳤다. 마른 몸에 병을 앓고 있었지만, 브르통에게 그녀는 ‘눈 속에 스쳐가는 범상치 않은 빛’을 가진 신비한 존재로 다가왔다.

여인의 이름은 나자(Nadja). 러시아어로 ‘희망’의 어원이다. 스스로를 ‘방황하는 영혼’이라고 소개하는 그녀에게, 브르통은 운명처럼 맘을 뺏겼다.

나자는 사회의 군중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여인이었다. 일정한 거처 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도 초연한 채 파리의 이곳저곳을 거닐며 남자들이 던지는 추파를 즐겼다.

나자에겐 남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심미안이 있었다. 브르통이 최면 등의 무의식 상태에서 쓴 시들에 감동하거나 심지어 작중 인물에 동화돼 행동하기도 했다. 당시 화자(브르통)가 이끌던 전위적인 문학운동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공감과 이해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난해한 브르통의 생각도 나자에겐 밤하늘의 밝은 별처럼 또렷이 보였다.

브르통은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하고자 글을 쓰는 작가였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엇을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밝히는 게 그의 관심사였다. 브르통은 자신의 차별성과 야망을 꿰뚫어 보는 나자를 예언자처럼 숭배했다.

그러나 숭배는 곧 욕심으로 바뀌었다. 그는 어느 순간 나자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그녀를 자신과 같은 예술가로 만들려 했다. 그녀에게 자신의 진가를 일깨우는 것이 소용없음을 안 브르통은 나자를 떠났다.

이 관계는 나자에게만 비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르통과 헤어진 나자는 정신병원에 갇혔다. 반면 브르통은 1928년 그녀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나자’를 발표했다. 나자는 지금까지도 초현실주의 사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별을 더 많이 후회한 쪽은 브르통이었을 거다. 나자는 ‘유일하게 (브르통 자신과 그의 작품의) 존재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찾는 건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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