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 미덕이 불운이라니…그래도 善을 택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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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악덕과 미덕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 선택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에요. ―미덕의 불운(사드·열린책들·2011년) 》

‘결국에는 선(善)이 악(惡)을 이긴다’는 명제는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술수와 계략을 부린 악인들은 흥하고 남을 위해 양보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 선의 때문에 고꾸라지는 장면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과 폭력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18세기 프랑스의 가장 혐오스러운 천재 중 하나로 손꼽힌 사드 후작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이 책의 주인공인 쥘리에트와 쥐스틴 자매는 세 살 터울로 쥘리에트가 15세 되던 해 거상이었던 아버지의 파산과 도피로 지금까지 머물던 수녀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두 자매가 살아가는 방식은 처음부터 달랐다. 언니 쥘리에트는 자신의 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부자 남성들을 유혹해 그들의 부와 명예를 누린 반면 동생 쥐스틴은 끝까지 정조를 잃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쥐스틴의 삶은 이때부터 꼬인다. 자신에게 도둑질을 시키려던 늙은 고리대금업자 때문에 오히려 누명을 쓴 뒤 감옥에 갇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던 외과 의사의 집에 갇혀 있던 소녀를 풀어준 게 적발돼 양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등에 범죄자의 낙인까지 찍힌다. 삶의 모진 풍파를 기도로 극복하려 들어간 수도원에서는 사제들에게 감금돼 성적 노리개로 수년을 보낸다. 하지만 쥐스틴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전부 승승장구한다. 고리대금업자는 부자가 됐고 생체실험을 하던 의사는 스웨덴 국왕의 제1외과의로 임명된다. 쥐스틴의 성을 유린한 사제 역시 인맥으로 리옹의 한 수도원장에까지 올랐다. 또 자신과 다른 길을 걸어갔던 언니 쥘리에트 역시 권력자의 애인으로 귀부인이 돼있었다. 사드 후작은 악으로 가득 차 있어 오히려 선인이 파멸되는 세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의 주장이 다소 과한 것은 사실이나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의심을 품은 독자라면 일독해 볼만하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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