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3>목민관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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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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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자리에 있는 분들은 모두 백성을 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창한 구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심한 배려가 중요합니다. 이용휴(李用休·1708∼1782)는 포의(布衣)의 문형(文衡)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베옷을 입은 벼슬 없는 선비였지만 경세(經世)의 문장을 펼치는 대제학(大提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는 뜻입니다. 함경도 문천 사또로 가는 벗에게 이런 시를 보냈기에 아마 이런 평가를 받은 듯합니다. 힘없는 백성에게 재판정은 벌거숭이 몸으로 가시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사또가 재판까지 맡았기에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백성을 배려하는 마음이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이용휴는 역시 목민관으로 가는 다른 벗을 위해서 ‘어린 아기 칭얼거리는 소리를, 그 어미라면 다 알아듣는 법. 지극정성이 정말 이와 같다면, 흉년의 정치 무엇이 어렵겠나?(영兒남남語 其母皆能知 至誠苟如此 荒政豈難爲)’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아기의 칭얼거리는 소리를 잘 알아듣듯 백성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면 흉년을 다스리는 정치라도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라 한 것이지요. 또 ‘시골 아낙 두 마리 개를 좇아, 광주리에 점심밥 담아가는데, 벌레가 혹 국에 빠질까, 호박잎으로 덮어두었네(村婦從兩犬 고로盛午) 或恐蟲投羹 覆之以瓠葉)’라고 하였습니다. 얼핏 보면 들에 밥 내어가는 농촌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낸 것 같지만 여기에 정치의 기본이 담겨 있습니다. 아낙이 남편의 밥을 내어가면서 혹 벌레가 빠질까 호박잎으로 국을 덮었습니다. 이렇게 남편을 생각하는 아낙의 마음처럼 백성에게 세심한 배려를 베푸는 것이 목민관의 자세라 한 것이지요. 이런 마음을 가진 공직자라면 사법이든 행정이든 어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목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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