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 노트]졸던 관객 벌떡 깨운 ‘Creep’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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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4일 수요일 흐림. 분리 불안. #220 Radiohead ‘Creep’(1992년)

21일 밤 일본 무대에서 열창 중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SUMMER SONIC
21일 밤 일본 무대에서 열창 중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SUMMER SONIC
21일 오후 7시 일본 지바 현에 위치한 QVC 마린 필드. 일본 프로야구팀 지바 롯데 마린스의 홈구장인 이 스타디움에 약 5만 명의 관객이 물샐틈없이 들어찼다.

20∼21일, 마린 필드와 인근 박람회장 마쿠하리 메세 일원에서 열린 대형 음악축제 ‘서머소닉 페스티벌’의 피날레,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8개 무대에 분산된 관객이 일제히 한곳에 몰린 것이다.

라디오헤드는 5년 만에 준수한 신작 ‘A Moon Shaped Pool’을 내놓은 것 외에도 강력한 자석을 하나 더 갖고 있었으니까. 오랫동안 콘서트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던 최대 히트곡 ‘Creep’을 그들은 5월부터 드문드문 몇몇 무대에서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무려 7년 만에 ‘Creep’이 예상 연주곡 목록에 들어온 것이다.

‘오늘 밤 우리가 Creep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무언의 아우성이 섭씨 30도의 이곳 공기에 섞여 부유하는 걸 난 분명히 느꼈다.

잠시 후 7시 15분, 신작 첫 곡 ‘Burn the Witch’로 라디오헤드의 무대가 시작됐다. 멤버들은 첫 다섯 곡을 신작의 1∼5번곡으로 꾸미며 꿈결 같은 대기를 살포했다. 솔직히 말해 수면제 같은 대기. 3번곡 ‘Decks Dark’가 채 끝나기도 전부터 객석 여기저기서 꾸벅꾸벅 조는 이들이 목격됐다. 이틀째 공연 관람으로 누적된 피로에 소금기 있고 후텁지근한 지바 연안의 공기가 섞였다. 거기 추가된 완벽하게 몽환적인 음악….

공연은 여섯째 곡 ‘2+2=5’부터 활기를 띠었다. ‘Airbag’ ‘No Surprises’ ‘The National Anthem’ ‘Idioteque’ ‘Let Down’ ‘Nude’…. 옛 명곡들의 첫 악절이 터져 나올 때마다 좀비 같던 관객들이 마침내 용수철처럼 기립했다.

기타를 바꿔 든 멤버 조니 그린우드가 ‘솔… 솔…’을 툭툭 건드리며 연주할 때,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아아, 그리고. ‘G-B-C-Cm’로 이어지는 ‘Creep’ 특유의 분산화음…. 우리는 스타디움 모양의 거대한 우주선에 탑승해 1990년대의 어딘가를 향해 함께 또 각자 날았다.

‘전에 네가 여기 있었을 때/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지/넌 꼭 천사 같았어….’

후렴 직전, 그린우드가 천둥처럼 기타를 두드렸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creep#라디오헤드#톰 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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