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전설의 숲에서 걸어나온 바슈티 버니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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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수요일 맑음. 태엽의 태업. #199 Vashti Bunyan ‘Heartleap’(2014년)

바슈티 버니언의 ‘Heartleap’ 표지. 딸이 그린 이 그림이 앨범의 모티프가 됐다. 파스텔뮤직 제공
바슈티 버니언의 ‘Heartleap’ 표지. 딸이 그린 이 그림이 앨범의 모티프가 됐다. 파스텔뮤직 제공
‘오랜만이에요….’

가끔은 스팸 메일 제목 하나에 가슴 한편이 저릿해진다. e메일 보관함을 열었더니 오늘은 7통의 ‘오랜만이에요’와 2통의 ‘실례합니다 메일 주소가 맞는지 모르겠는데…’가 도착해 있다. 발신인은 같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평생 들 나이를 20년 동안 다 먹어버린. 그래서 일찍 죽어버리는. 그게 아니면 쓸쓸히 숫자뿐인 나이를 받아들이며 늙어가는. 저주받은 별들.

영국 포크 가수 바슈티 버니언(71)에게는 모든 일이 참 오랜만이었다. 20대 초반이던 1960년대 후반. 그는 남자친구와 2년간 영국 곳곳을 떠돌았다. 마차에서 만든 노래들을 모아 녹음해 발표한 1970년 데뷔작 ‘Just Another Diamond Day’는 평단과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섬세한 음악만큼이나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버니언은 음악계를 훌쩍 떠났다. 남자친구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다. 음악계에서 받은 상처 탓인지 그는 음악을 듣지도,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의 나이 52세 되던 1997년, 우연히 자신의 이름을 구글 검색창에 쳐 넣어보기 전까지는.

인터넷 바다 속에서 그의 음악은 숨은 보물로 평가되고 있었다. 1970년 데뷔작 LP레코드는 장당 100만 원 이상을 호가했다. 버니언은 힘을 얻었고 낡은 기타를 다시 집어 들었다.

60세 되던 2005년, 무려 35년 만의 앨범인 2집 ‘Lookaftering’을 내놓으며 버니언은 전설의 숲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3집이자 마지막 앨범인 ‘Heartleap’(2014년)가 최근 국내에 정식 발매됐다. 짝사랑하는 이의 독백처럼 가까스로 새나오는 버니언의 목소리는 반딧불 같다. 기타 신시사이저 현악 칼림바 리코더 플루트에 뒤섞여 조용히 반짝인다. 울퉁불퉁한 영욕의 외침 대신 시냇물처럼 낮은 굴곡으로 노래는 흘러간다. 쉽고 깊은 노랫말은 들여다볼 만한 우물.

버니언의 삶은 영화 ‘서칭 포 슈가맨’(2011년)의 로드리게즈와 닮았다. 빌 페이, 린다 퍼핵스의 조용한 귀환 이야기와도.

명곡을 숱하게 만든 60대 음악가를 작년에 만나 물었다. 이미 대중음악사에 충분히 기록될 전설을 만드셨는데도 계속 새 노래를 만드는 이유는 뭔가요. 우문이었을까.

김창완밴드가 이달 초 발표한 쓸쓸한 싱글 ‘시간’은 이렇게 읊조린다.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바슈티 버니언#heart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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