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영어, 영국이 세계에 준 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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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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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비시/로버트 매크럼 지음·이수경 옮김/484쪽·2만 원·좋은책들

신웅재 광운대 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왼쪽)
신웅재 광운대 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왼쪽)
“왜 어떤 독일인들은 셰익스피어를 우상처럼 숭배할까?”

“유명한 일본 화가인 우에노 노리오는 왜 자신의 추상화에 영어 단어를 집어넣을까?”

2018 겨울올림픽의 평창 유치 과정에서 다양한 인사의 영어 프레젠테이션이 큰 영향을 미쳤듯, 세계 언어로서 영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영어 변천사 권위자인 저자가 지은 이 책은 영어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지위, 즉 글로비시(‘글로벌 잉글리시’의 약어)가 됐는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영어는 전 세계에 퍼지는 바이러스와도 같다. 영국과 미국의 영향을 이미 초월해 초국가적 추진력을 지니게 된 글로비시가 됐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영어는 더 이상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세계인의 협력과 공동번영을 이뤄낼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글로비시가 지구촌의 자본주의 발전과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통치 도구였던 영어는 역설적으로 현재 인도 경제 발전의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 문서의 80% 이상이 영어로 표현된다. 이 무한하고 자유로운 정보는 폐쇄적인 독재 정치 체제마저 노출시키고 무너뜨렸다.

한때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수백 년간 이웃 민족들의 침입과 약탈에 시달린 북대서양의 조그만 섬나라 영국, 그리고 이 섬나라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언어인 영어.

이 책은 앵글로색슨족의 고대 언어에 불과했던 영어가 현재 세계인의 보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되기까지 그 기나긴 과정을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북대서양의 작은 섬나라 영국에서 시작해 세계의 언어가 된 영어. 저자는 “영어가 전파력이 강하고 적응력이 높으며 대중적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글로비시의 수명과 효능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그래픽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북대서양의 작은 섬나라 영국에서 시작해 세계의 언어가 된 영어. 저자는 “영어가 전파력이 강하고 적응력이 높으며 대중적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글로비시의 수명과 효능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그래픽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 책은 먼저 영어의 초기 역사를 살펴보고 현재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초기 영어의 기본 요소들을 검토한다. 노르만 정복, 인쇄술 발명, 영어성서 번역, 신대륙 이주, 노예제도와 남북전쟁, 인터넷과 문자메시지 발명 등의 획기적 사건들과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마크 트웨인, 링컨, 처칠 등 문인 및 정치인들이 영어의 변화와 발전에 끼친 영향을 설득력 있게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미국 영어 및 흑인 영어의 형성이 이 언어의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영어는 더욱 대중화됐고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있는 초석을 다지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도의 실리콘밸리인 방갈로르와 발리우드의 호황의 이면에 영어가 있다는 것과 중국의 ‘크레이지 잉글리시’ 학습열풍 등 최근 현상들도 적절한 자리에 언급해 날로 확산되는 글로비시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실감 있게 드러낸다.

이 책은 마치 영어라는 생명체가 주인공이 돼 오랜 세월 전 세계를 떠돌며 성장해 오다가 ‘현대의 총아’인 글로비시로 진화된 과정을 보여주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와 같다. 영어의 미래에 관해서도 낙관적이다. “영어가 과거의 라틴어처럼 점차적으로 쇠퇴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반론을 펼친다. 라틴어는 소수의 학자와 성직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였기에 단명했지만, 영어는 원래부터 다수의 서민 대중이 선호하는 언어였기 때문에 생명력이 길다는 것이다. 또 영어는 전파력이 강하고 적응력이 높으며 대중적이고 전복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즉 글로비시의 수명과 효능은 무궁무진하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이 책은 영어라는 언어의 발달과정을 총체적인 문화현상의 산물로 파악하는 통섭적 시각을 보여준다. 또 영국과 미국의 역사적인 큰 사건들과 걸출한 문인들의 업적이 영어에 끼친 영향과 인과관계, 영어의 미래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통찰한다. 글로벌 시대의 모든 현대인에게, 특히 역사와 문학에 관심을 지닌 독자들이라면, 흥미와 지식과 교훈을 제공하는 인문교양서가 될 것이다. 유려한 문체도 돋보인다. 어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로 추천할 만하다.

영어는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가 세계에 준 가장 커다란 선물이다. 영어를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세계인들에게 이 책은 강력한 영어 학습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으리라 본다.

신웅재 광운대 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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