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16] 편안함은 이내 권태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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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6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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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 : 스웨덴 스톡홀름(7월11일)~노르웨이 오슬로(7월16일)

아침에 스톡홀름에 도착한 우린 간단히 시내투어를 마치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쪽으로 향했다. 유로를 사용하는 핀란드와 다르게 스웨덴은 자국의 통화를 쓴다. 유럽연합이 출범한 후 유럽 어디서든 유로가 자유로이 사용되는 줄 알았는데, 유로를 내밀면 수수료가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가져간 다국적 은행의 현금카드는 모든 주유소에서도 통용되지 않았다. 식당과 슈퍼에서 무리 없이 사용하였는데 주유소만 안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현금을 인출하여 가지고 다녔는데 또 다른 난제에 부닥쳤다. 주말에 주유소는 대부분 무인자동화 주유소로 운영 되는 것이다. 현금을 가지고도 기름을 못 넣는 상황에 직면했다.


스웨덴의 한 주유소에서 독일의 솔로 라이더를 만났다. 안드레이는 여름휴가로 노르웨이의 북단 노드캅까지 올라가 피오르드 해안을 따라 내려온다고 했다. 우리의 경로와 비교해보니 상당부분 겹쳤다. 캠핑장에서 함께 야영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쪽 텐트에 초대하여 같이 빵과 맥주를 마시며 모터사이클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까지 총 600km정도를 같이 다니다 우리는 핀란드 방향 도로를, 안드레이는 노르웨이쪽 도로를 택하면서 헤어졌다.

■ 현금이 있어도 주말 무인주유소에서 결재하지 못하는 난감함


전반적으로 쾌적한 라이딩이었다. 그러나 쾌적함은 한 두시간만에 지루함으로 변했다. 방금까지 러시아와 몽골의 도로에서 바짝 긴장하고 하루에 긴 거리를 달리던 우리에겐 이 같은 편안함이란 곧 지루함과 동의어였던 것이다. 캠핑장이 널려있기에 숙소를 잡기 위해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약 15유로를 지불하고 텐트를 치고 공동주방과 공동샤워장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모든 것이 쉬워지고 쾌적해졌지만 우리에게는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도로 라이딩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여행은 2주 동안의 스케줄로 계획되어 있었다. 전 세계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이 한번 달려보고 싶어 하는 도로이기 때문에 좋은 길은 다 달려보자고 충분한 일정을 배정한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이틀을 달려보니 둘째는 "지겹고 재미없다"는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라이딩보다는 관광과 체험을 더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평화로움, 여유로움. 핀란드로 들어와서부터 그동안의 긴장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든, 어디서든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이 자유로움은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권태로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설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길을 달려도 몽골의 흙길이 생각났고 공사현장을 지나가면 러시아의 험난한 도로 공사현장을 통과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일상의 편안함이 권태로움이 되다니…. 상당수 대원들이 자연경관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당초 무작정 내달리던 러시아 여정을 끝내고 북유럽으로 넘어오면서 기대한 바가 적지 않았다. 이제는 사람도 만나고 문화도 체험하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부터 우리는 스칸디나비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기위해 또 러시아처럼 하염없이 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점점 개인적인 불만이 쌓이게 되고 이래선 안 되겠구나 하며 대원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여행에서 얻고자하는 것이 서로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내 경우는 그 나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문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소중한 시간을 평생 기억하리라 생각했다. 그냥 달리는 것, 라이딩 하는 것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여유롭게 더 아름다운 곳에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인 듯 하다.

■ 지나친 평화로움으로 여정은 권태로움에 빠지고

그런데 대원들의 생각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았다. 라이딩 자체를 즐기기 위해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루트에 포함하자고 한 필자의 경우는 노르웨이 북위 69도 지점의 트롬소부터 내려오면서 점차 시작되는 절경들에 만족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개 산을 타고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로, 계곡을 따라 흐르는 듯한 완만한 곡선의 도로, 해안선을 따라 굽이치는 남해안의 도로가 가장 흥미로운 길이었다. 그런데 피오르드 해안의 도로들은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족히 100m는 넘어 계곡 좌우로 병풍처럼 서 있는 하얀 설산들, 그리고 가파른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 산과 산 사이에 있는 맑디맑은 호수들은 라이더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이 절경의 최정점은 로포텐과 가이랑게른 피오르드였다. 절경들의 연속인 이 곳에서 어디가 어딘지를 기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준비해온 GPS 기능을 갖춘 디지털 카메라로 영상을 담았다. 차후에 우리만의 블로그에 지도와 함께 사진을 업로드하면 우리의 여행 기억도 남길 수 있고 다음 여행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다. 다름 아닌 날씨였다. 이곳은 해안선을 따라 2500m 내외의 험준한 산들로 가득하다. 하루 라이딩에 해발 1m의 저지대부터 해발 1200m의 도로까지를 서너 번 이상 오르락내리락했다. 날씨는 이상기온으로 예상보다 춥게 느껴졌다. 해안가는 섭씨 20도 정도이지만 산으로 올라가면 10도 이하로 내려갔다. 그 이유를 놓고 누군가는 아이슬란드의 화산재 때문이라고 귀뜸하기도 했다

모두가 긴팔 옷은 꺼내 입지만 그래도 가을날씨에 시속 80~100km로 달리는 것은 에어컨을 최대로 켜고 그 앞에 10시간 서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2주 동안 하루 몇 시간 정도를 빼고는 매일 비가 왔다.

게다가 모기까지 극성이었다. 러시아 모기는 얌전한 편이었다. 몽골의 서쪽 알타이 산맥 쪽의 모기도 최악의 경험으로 남아있었지만 여기 노르웨이의 모기도 그에 못잖은 날카로움을 과시했다. 모기는 도시에 들어가면 없어지지만 숲과 캠핑장에서의 우리 일행은 모기에게는 간만에 보는 진수성찬이었나 보다. 모기와 날씨만 조금 더 좋았다면 여정이 행복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아쉬움이 훗날 다시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노르웨이의 해안선을 따라 있는 도로는 대부분 편도 1차선도로이다. 험준한 산기슭에 만든 도로라 갓길도 없고 폭이 여유롭지 못하다. 반대쪽 차선에서 트럭이 올 때는 아찔했다. 버스나 트럭 두 대가 마주보고 지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백미러끼리 스치면서 지나쳤다.


터널도 많다. 짧은 터널부터 길이가 30km에 이르는 긴 터널까지 50여개는 족히 지난 것 같다. 오래전에 지어진 터널들의 조명 상태는 운전이 위험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이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터널을 들어서기 전에 충분히 감속하는 것이 좋다. 화창한 날 한껏 기분 내고 달리다 갑자기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절경들을 감상하며 드라이브를 즐기며 노르웨이의 남쪽으로 내려와 여행책자에 나오는 도시와 마을들을 방문했다. 보스, 베르겐, 구드방겐 등은 노르웨이 피오르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이미 피오르드의 절정을 감상한 후에 들른 이들 마을과 도시는 그저 잠시 쉬어가는 쉼터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 "극동아시아? 재팬 or 차이나?" "노노, 꼬레아"

열흘도 넘게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달린 우리는 최남단 크리스티안 샌드까지 내려가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넘어와 최단거리로 유럽대륙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4개국은 도시를 제외하면 집집마다 모터사이클이 한 대씩은 서있는 것 같다. 또 이곳 여름은 유럽각국의 모터사이클 라이더들로 북적인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셋은 어딜 가나 동네의 구경거리였다.

처음에는 타이어까지 싣고 다니는 우리의 행색을 보고 사람들이 모이는 줄 알았는데 이들은 우리 번호판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이었다. 유럽연합에 속한 모든 나라는 같은 모양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데 우리의 작은 번호판에 적힌 한글과 숫자가 이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열이면 열 사람이 모두 "재팬 or 차이나?"라고 물었다. "노노, 꼬레아"하면 그제야 "아! 꼬레아"하며 "대단히 먼 길을 왔다"고 칭송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기 집에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권하기까지 했다. 우리 외모를 보고 중국과 일본만을 생각해 내는 이들에게 한국인의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만 해도 민간 외교를 충분히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북반구의 북위 66도 위쪽에서는 밤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경험할 수 있다. 북반구의 일곱 개 나라가 백야권이다. 그 중 러시아, 핀란드, 노르웨이에서 이를 목격했다. 새벽 두시에 북쪽에 붉게 물드는 석양과 일출을 동시에 보는 것은 우리에게는 신기하고 독특한 경험이지만 2주 동안 밤이 없이 잠을 자다보니 서서히 어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사계절과 밤낮이 확실한 우리나라가 조금씩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성자 = 이민구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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