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⑬] 비자 기한이 만료된 것에 땅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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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6일 1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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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 :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7월2일)~모스크바(7월5일)


모두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논리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하도 억울해서였다. 우리는 '여행보다는 생존이 급박했던 힘겨운 몽골여정'을 끝냈으니 이제는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자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지겨웠던 모래사막이 끝나고 아스팔트라는 신천지가 펼쳐졌으니 느긋하게 시내관광을 즐기면서도 충분히 장거리를 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얼마나 고대해 왔던 러시아란 말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황량했던 시베리아만 경험했을 뿐이다. 잠을 조금 포기하고 먹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러시아 문화의 정수를 느껴보고 싶었다. 이게 우리의 속내였지만, 현실은 비자만료 기한에 발목을 잡혀 이제 어떻게든 빨리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제는 필사적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달려야만 한다. 답답하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서로 들 짜증이 밀려왔을 것이다.
고속도로변 노점상에서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
고속도로변 노점상에서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

■ 무작정 내달려야 하는 억울함에 잠을 설치다

아침에 서둘러 여장을 꾸렸다. 다들 상황을 아는 지라 움직임도 빨라졌다. 휴식도 짧아졌다. 식사 역시 길거리에서 간단히 빵과 잼으로 해결했다. 모두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말 그대로 "닥치고 달려"일 뿐이었다. 오전에만 350km 넘게 질주했다. 그런데 깜박 길을 잘못 들었다. 트럭기사가 말해준 고속도로는 카자흐스탄 끝머리를 잠깐 통과해야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간단한 절차만으로 통과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몸이다. 국경 군인의 친절한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후진해 북쪽 예카테린부르크로 향할 수 있었다. 최단거리로 직진하지 못해 여정은 3500km로 늘어났다.

"닥치고 달려"가 이뤄진 첫날 960km를, 둘째 날 900km를, 셋째 날에도 900km를 내달렸다. 그리고 넷째 날 다시 700km를 달려 저녁6시에 드디어 러시아의 정점인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닥치고 달려" 모드로 4일을 주행하면서도 별다른 사고 없이 무작정 달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첫째 날 완전히 길을 잘못 든 얘기로 돌아가보자.

트럭기사가 소개해준 도로는 아주 조금이지만 카자흐스탄을 거쳐 다시 러시아로 진입하는 길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카자흐스탄과 한 나라였기에 때문에 별다른 검문 없이도 쉽게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국경을 건너야 하는 일이고, 비자가 필요한 나라였다. 허허벌판을 달리다 검문소가 나오자 우리는 별 의심 없이 평범한 러시아의 검문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문소 직원이 우리여권을 유심히 살펴보다 카자흐스탄에 입국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화들짝 놀라 "아니다"고 손사래 치자 그는 지도를 꺼내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 직원이 아무생각 없이 출국도장을 찍었다면 우리는 러시아를 빠져나가 카자흐스탄 비자가 없어 입국을 못하는 국제미아가 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국경 직원들의 친절한 설명으로 루트를 수정할 수 있었다.

■ 현금은 부족하고, 신용카드 받아주는 주유소는 없고

샹프에서 도움을 준 학생과 기념촬영
샹프에서 도움을 준 학생과 기념촬영

둘째 날은 현금이 문제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금이 고작 200루블 뿐이었다. 러시아 주유소는 신용카드가 통하지 않아 반드시 현금이 있어야 한다.

아침 일찍 가까운 마을은행에서 돈을 찾으려하는데 ATM 기계에서 돈이 인출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들어온 글로벌체인의 은행카드이지만 에러가 발생했고, 불행하게도 은행직원과 소통이 불가능해 해결 방도가 없었다. 직원은 몸짓으로 200km 뒤쪽의 큰 도시로 가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뒤가 아닌 앞으로 전진 할 수밖에 없는 신세. 앞쪽으로 가다 큰 도시 인근에 신용카드가 되는 주유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100% 확실하다는 보장이 없는 게 문제였다. 그 때부터 기름절약 운행을 해야 했다.

우리가 타고 있는 모터사이클은 시속 100km로 달리면 리터당 25km를 가지만 시속 80km로 달리면 35km정도를 갈 수 있다. 문제는 속도를 줄이면 주행시간이 대폭 늘어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모든 차들의 추월을 허용해야 하는 고통이 바로 그것이다. 거대한 트럭이 옆을 추월할 때 이는 바람에 모터사이클은 크게 휘청대기도 한다. 만일 운전자가 졸음운전이라도 하는 날엔 바이크 운전자는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 된다.

발견하는 주유소마다 혹시 카드가 될지 기웃거렸지만 간판에 카드를 붙여 놓았고 계산대에 버젓이 카드단말기가 있어도 "오늘은 안 돼요"라고 말하곤 대화를 끝내버렸다.

그러기를 세 시간, 우리는 목적지 인근의 50km 전에 위치한 허름한 주유소에서 신용카드를 받아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큰 도시로 들어가 은행을 찾아 직원의 설명을 들어보니 카드인출 한도액이 턱없이 적어서 발생한 문제라는 점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은행들에서 의례 찾던 금액이 이 은행에서는 한도 초과였던 것이고 낮은 금액으로 뽑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언어가 안 통하는 상황이어서 사소한 문제도 러시아 도로 복판에서 기름이 없어 주저앉는 위험상황으로 이어질 뻔 했다.

■ 이슬람 문화와 러시아 정교가 만난 도시 카잔을 단 2시간에
러시아정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자 적절히 조화를 이룬 카잔에서
러시아정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자 적절히 조화를 이룬 카잔에서

셋째 날은 유일하게 시간을 내에 관광을 한 날이다. 수많은 도시들을 무심히 지나쳐도 이슬람문화와 러시아 정교가 섞인 도시이고 볼가강과 카잔강이 만나는 '카잔'을 흘려 보낼 수는 없었다.

이 곳에서는 제대로 관광을 하고 싶어 그곳에서 저녁을 먹는 일정으로 잡아 시내 안으로 들어왔다. 수많은 식당을 뒤로 하고 결국 맥도날드를 발견해 햄버거를 먹었다. 카잔시의 이슬람 교회와 러시아 정교 교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2시간 만에 도시를 떠났다. 우리에게는 2시간도 사치였던 셈이다.

또한 3일 동안은 매일 시간 변경대를 지났다. 하루를 25시간으로 지낸 셈이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행로는 하루가 26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달리고 또 내달렸다. 시간에 쫓기는 우리에게는 너무 고마운 일이었지만 주행시간이 한 두 시간 느는 것은 당연히 고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3000km를 주파해 모스크바에 당도한 것이다.

작성자 = 이민구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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