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새내기 철학입문서’ 20선]<17>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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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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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여우는 왜 그런말을 했나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김용규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해석’은 작품의 배후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분석’으로서, 비평가들이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분석을 통해 얻어진 비평이라는 이름의 커피는 어느 문학 살롱에서든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해석은 다르다. 해석은 여느 문학 살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메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와 튀빙겐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이 책에서 문학작품 13편 속에 담긴 철학 이야기를 꺼내 독자와 소통한다. 문학 속 주인공들의 고민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독자가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왕자는 여우를 통해 ‘길들이는 법’을 배운다.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수많은 여우 가운데 오직 한 여우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어린 왕자’에 나타난 관계 맺는 법과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는 유대인 신학자 마르틴 부버의 이야기를 연관시킨다. 부버는 저서 ‘나와 너’에서 “‘나’ 그 자체란 없으며 오직 근원어 ‘나-너’의 ‘나’와 ‘나-그것’의 ‘나’가 있을 뿐이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썼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등 주인공 싱클레어의 정신적 성장을 상징하는 꿈이 모두 8번 나온다. 저자는 싱클레어의 꿈을 정신분석학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본다. 특히 융의 분석심리학 그늘 아래에서 쓰인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소설에서 ‘성숙한 인간’의 표본으로 나타난 에바 부인은 모성적이면서 동시에 부성적인 존재, 즉 융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성 원형인 아니마(anima)와 남성 원형인 아니무스(animus)가 통합을 이룬 존재다. 융은 정신적 성숙은 원형의 통합으로 이뤄진다고 했고 이렇게 통합된 정신을 ‘자기(the self)’라고 불렀다. 저자는 헤세가 말하는 ‘자기실현’과 융이 말하는 ‘자기’의 실현으로 이뤄지는 ‘개성화’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한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정치학자 해나 아렌트가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언급한 ‘공적영역’ ‘사적영역’ 개념을 끌어들인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에도 북한에도 만족하지 못하며 제3의 중립국인 인도로 향한다. 그에게 남한은 부도덕한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는 어두운 ‘밀실’만 있고 사회적 정의가 구현되는 ‘푸른 광장’은 없는 곳이고, 북한은 모든 개인적 요소를 적대시하고 집단의 이념만 중시하는 ‘잿빛 광장’일 뿐이다.

최인훈이 인간의 삶에는 ‘밀실’과 ‘광장’이 필수적이라고 본 점은 아렌트가 “인간은 공개적 장소에서 발언과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임을 드러내는 ‘공적 존재’이면서 자기 자신과 사적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사적 영역’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본 것과 일맥상통한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며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느 정도로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를 통해 보여준다.

‘1984’에서는 모든 이가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시스템에 의해 통제된다. 사상경찰이 개인에 대한 감시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은 ‘입 밖에 내는 소리는 모두 들리고, 캄캄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행동이 감시받는다’고 생각한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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