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송월주 회고록]<16>“소설로, 소리로 보살행을 실천”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158>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소설가 조정래 씨가 2007년 소설 ‘아리랑’이 100쇄를 넘어선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참석했다. 송월주 스님은 그의 부친인 조종현 스님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었다. 동아일보DB
소설가 조정래 씨가 2007년 소설 ‘아리랑’이 100쇄를 넘어선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참석했다. 송월주 스님은 그의 부친인 조종현 스님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었다. 동아일보DB
‘천지개벽이야/눈이 번쩍 뜨인다/불덩이가 솟는구나/가슴이 용솟음친다/여보게/저것 좀 보아/후끈하지 않은가.’

동해가 탁 트여 있는 강원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 가는 길목에는 아담한 시비가 있다. 시조시인 조종현(1906∼1989)의 ‘의상대 해돋이’. 종현(宗玄)은 법명이고 본명은 용제다. 나중 그는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조정래 소설가의 부친으로 더 알려지게 된다. 작가의 홈페이지에는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일제시대 종교의 황국화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시범적인 대처승이었음’이라고 돼 있다.

나는 아들인 소설가보다는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홈페이지의 표현이 틀렸다고 할 것은 없다. 그러나 너무 짧아 나의 기억을 보태고 싶다. 스님은 총무원장을 지낸 경산 스님과 가까웠다. 그래서 종단 소임을 맡고 있는 나는 스님을 만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상당수 스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님은 대처승(帶妻僧)이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스님의 삶은 세 갈래 길로 읽힌다. 13세에 선암사로 출가한 뒤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학교를 나왔다. 동요 발표에 이어 1930년 동아일보에 시조 ‘그리운 정’을 발표하면서 시조시인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그의 시 정신은 만해 한용운, 창작 실기는 노산 이은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보성고 등에서 18년간 교단을 지키기도 했다.

스님은 처세라기보다는 세상의 순리를 잘 아는 분이었다. 대처승이지만 불교 정화(淨化)라는 큰 흐름이 맞았기에 협조했다.

그는 온화한 성품으로 여러 가지에 두루 뛰어났다. 불교 선리(禪理)에 특히 밝았고 노년에는 불교 교육과 포교에 힘을 쏟았다. 대처라는 일종의 낙인이 그의 족적을 낮추어 보게 되는 이유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불심(佛心)과 시심(詩心), 교육이 따로 있지 않았으리라.

광복 뒤 잠시 선암사 부주지로 있으면서 사회개혁을 위해 사찰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던 스님은 1948년 여수·순천 10·19사건 와중에 몰매를 맞는 등 가족과 함께 수난을 겪었다. 나는 소설에 이어 영화로 만들어진 ‘태백산맥’을 보면서 이때의 기억이 소설을 잉태하는 실마리가 됐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태백산맥은 그곳 토박이도 잃어버린 사투리와 문화를 제대로 살려냈다. 그러나 빨치산은 의롭고, 경찰과 반공청년단은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적인 편향을 심어준 것은 문제라고 느낀다.

1998년 조계종이 운영하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의 역사관 개관을 앞두고 소설가를 만났다. 역사관 위원으로 위촉된 강만길 교수와 조정래 작가 등 4, 5명이 전시물을 검토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조 씨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올 테니 일왕의 항복 선언을 육성으로 들려주는 것은 자극적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합리적이면서도 차분했다.

종현 스님은 말년에 영화사를 가끔 찾았다. 스님은 아들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 “문재(文才)가 있다. 소설가로 주목받고 있어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죽고 없는 내 딸 청이,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제.”

그러다 심 봉사는 두 눈을 끔쩍하더니 눈을 번쩍 뜬다. 심청가의 심 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나는 2003년 금산사에서 열린 국제개발구호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촌공생회 창립 행사를 비롯해 국악인 안숙선 씨에게 창을 청할 때는 어김없이 이 대목을 부탁했다.

불가에서 눈을 뜬다는 것은 지혜를 얻는다는 것이다. 집착과 애착을 떨쳐야 얻어지는 것이 바로 지혜의 눈이다. 그것은 또한 성불이다. 그는 소리를 통해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

언젠가 그는 전통 소리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고 아쉬워했다. 수입의 3분의 1은 후학 양성을 위해 쓰려고 애쓴다고도 했다. 그에게는 친절하고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이 몸에 배어 있다. 그 작은 체격에서 어찌 그리도 넉넉하고 힘 있는 소리가 나오는지, 감탄할 뿐이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17>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고건 전 총리와의 인연을 얘기합니다. 스님은 “고 총리, 대권 (大權)을 잡을 기회를 놓쳤어요”라고 말합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