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19>‘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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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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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고독한 경영의 길
경쟁회사들 쓰러질 때마다
‘반면교사’ 삼아 사업확장 신중
‘대표’ 부담에 도망치고픈 순간도

애경유지 서울 영등포 공장(현 AK플라자 구로본점) 자재과의 1972년 모습. 남자 직원이 재떨이와 성냥을 책상에 올려둔 채 일하고, 여자 직원은 사환으로 보이는 앳된 여성 한 명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기혼 여성을 찾기 힘들었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애경유지 서울 영등포 공장(현 AK플라자 구로본점) 자재과의 1972년 모습. 남자 직원이 재떨이와 성냥을 책상에 올려둔 채 일하고, 여자 직원은 사환으로 보이는 앳된 여성 한 명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기혼 여성을 찾기 힘들었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처음 경영에 나설 때 소망은 “어떻게든 이 회사를 잘 가지고 있다가 아버지의 유업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업에서 현상유지란 있을 수 없다는 진리를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발전하느냐 후퇴하느냐. 앞으로 나가느냐 쓰러지느냐의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 제자리에 조심조심 서 있기만 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됐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점은 수많은 갈림길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마지막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주위의 많은 충고와 조언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내 몫이었다. 남편 없이 살아오면서 가장 어렵고 고독한 때는 그런 결정을 혼자서 내려야 할 때였다. 더구나 경영에 나섰던 초기에는 여성 기업인이 거의 없어서 나는 상의할 만한 지인도 마땅치 않았다. 대표라는 자리가 너무 버거워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나는 사업 초기, 우리 회사가 비누로 시작한 만큼 비누로 성공해야 하며 그 길이 회사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여사장으로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한 1970년대 초, 전국의 비누회사는 10여 개나 됐다. 모두 훌륭하고 실력 있는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몇 안 된다. 나는 경쟁 회사가 쓰러질 때마다 왜 그들이 실패했는지 세심하게 연구하면서 사업을 확장하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매번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이런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사업을 하면서 지켜온 다른 원칙은 사업이란 또 하나의 인생행로라는 점이다. 사업에 대한 결정은 나를 믿고 따르는 임직원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이지만 사업가인 나에게 사업의 행로는 곧 내 인생 행로가 걸린 문제였다.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은 인생에서나 사업에서나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경영자의 사람 됨됨이를 보면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가 어떻겠다는 점을 대개 짐작할 수 있다. 경영자의 인생과 그가 경영하는 회사의 운명은 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장으로 있을 때 여사장이라서 기업이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여자와 남자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여자든 남자든 임직원을 이끌기 위해서는 지도력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을 갖춰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포용력도 필요하다. 여러 사람을 끌어안고 경영자가 제시한 같은 방향의 비전을 향해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업무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나은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다. 당장 잘못된 점이 보인다고 해도 느긋하게 참을성을 갖고 지켜볼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실무자가 기획안이나 결재 서류를 들고 오면 실무자가 가장 잘 안다는 전제 아래 재량권을 주고 서류를 검토해서 내 아이디어를 덧붙이거나 큰 방향을 제시했다. 내가 모르는 지식이 있으면 알기 위해 노력했고, 항상 직원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명령보다는 대화를 유도하고 그들을 존중하면서 일했다. 업무에서 한 번도 남녀를 가려서 생각하고 대한 적이 없었다. 어느 분야의 담당자라면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무엇이든 똑같이 물어가며 처리했다. 그리고 거기에 내 아이디어를 더했다.

오래전 여성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여직원이 있었다. 자신은 좋은 대학을 나왔고 공부를 썩 잘해서 애경에 입사했는데 왜 급여에서 남녀 차이가 있고 간부사원이 늦게 되느냐고 담당 전무에게 항의를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여직원을 조용히 불러 “우리 회사뿐 아니라 한국의 사회구조가 그렇고, 우선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온 기간 동안 공백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설명했다. 인사팀을 통해 알아보니 그의 지적이 일리가 없지 않았다. 그 여직원 혼자만의 임금 체계를 바꿀 수는 없어 모든 여직원의 임금을 5%씩 일률적으로 인상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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