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02>‘愛人敬天’ 도전 40년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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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화장품 사업 진출
화장품시장 개방 앞둔 1983년
시장선점위해 초고속 업무처리
기술제휴 8개월만에 제품 판매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전투에서 적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 오래전부터 인간은 화장품을 사용해 왔다. 특히 여자에게 화장이란 자신을 꾸미는 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여자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1970년대부터 화장품 사업을 신규사업으로 구상해 왔다. 애경유지가 출범한 이후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화장품 사업 진출이 기술적으로나 제품 구성 면에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생활용품 회사들은 비누 합성세제 등의 세정제에서 샴푸 치약 화장품 등 퍼스널 케어 제품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물론 선발 업체가 국내 화장품 업계를 확고하게 분할하고 있었고, 업체 간 경쟁 또한 치열한 ‘레드 오션’이어서 애경이 이 같은 ‘화장품 춘추전국시대’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고 큰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화장품 시장은 해외 업체들에도 서서히 문을 열어 가고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부는 외제 화장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화장품산업 보호정책을 펼쳤다. 우리나라 화장품이 외국제품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산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정부는 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꿨다. 1983년부터 아이섀도,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헤어컨디셔너 등의 제품을 부분적으로 수입할 수 있었고, 1986년부터는 매니큐어, 팩, 샴푸, 헤어린스 등 외제 화장품에 대해 전면 개방이 예고됐다. 애경으로서는 경쟁자가 더 늘어나기 전에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화장품 업계에 진출해 있는 기존 화장품 업체도 기술 및 제품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잇따라 해외 브랜드와 제휴에 나서고 있었다. 태평양장업이 일본 시세이도, 한국화장품은 프랑스의 로레알, 한미화장품은 미국의 레브론과 기술제휴를 맺어 선진 기술을 들여오고 있었다. 또 피어리스는 미국의 맥스팩터, 쥬리아는 일본의 고바야시 및 고세와 제휴를 맺었다. 이들 업체에 당시 상황은 해외 화장품 브랜드가 수입되기 전에 기술 수준을 높이는 한편 경쟁사와도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훗날 국내 화장품 산업이 크게 발전한 때로 평가받고 있다.

애경이 화학과 유지 기술은 자신 있었지만 화장품 기술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한 상황이어서 이런 시장에 진입하려면 차별화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경쟁이 치열한 색조 메이크업 제품보다는 피부건강을 위한 제품, 즉 기초화장품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또 시장 개방 속 선진기술과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해외 화장품 메이커와 제휴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세계의 유명 기업을 대상으로 면밀한 검토를 거쳐 기술 수준과 국내 인지도가 높은 미국의 체서브러폰즈(Chesebrough Ponds)사로 제휴 회사를 결정했다. 폰즈사는 바셀린으로 국내 소비자에게도 잘 알려졌으며, 연간 매출액은 당시 15억3000만 달러로 매년 매출이 10∼15%씩 성장하고 있었다. 폰즈사 쪽에서도 한국에 진출할 교두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두 회사가 제휴를 통해 생산한 제품은 대웅제약을 통해 약국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애경유지는 1983년 3월 15일 폰즈사와 화장품 제조 관련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4월 대전 제2공단에 화장품 공장을 착공하는 등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1983년 8월 22일 당시 보건사회부에서 미국 폰즈사의 기술 도입에 의한 화장품 사업계획을 인가받고, 11월 7일 연산 기준 크림류 300t, 로션류 200t 규모의 화장품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12월 1일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폰즈 크림과 바셀린 로션에 대한 발매기념식을 열었다.

기술제휴 초기 바셀린 로션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폰즈와 기술제휴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인 합작사 설립을 하기로 결정하고 1984년 11월 합작투자 계약을 했다. 다음 해 당시 재무부로부터 합작투자계약에 대한 인가(2월), 애경폰즈주식회사 창립총회 개최(3월), 사장·부사장 임명(7월) 등 절차는 순조로웠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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