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2>경제개발의 길목에서 ②

  • 입력 2009년 4월 2일 02시 58분


화폐개혁이 실시된 1962년, 신권 교환을 위해 은행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화폐개혁이 실시된 1962년, 신권 교환을 위해 은행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남덕우

②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허점

강의와 연구에 쫓기는 나날이 계속되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나는 점점 정부 일에 말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편성하고 각종 개발정책을 밀고 나갈 때로 이 작업에 교수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의 기획조정실 주관으로 평가교수단이 편성됐다. 정부의 계획과 정책을 평가하는 심사분석회의가 분기별로 개최됐는데 이 회의에는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고 나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박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평가교수단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및 정책에 대한 평가 분석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나도 개발계획, 금융정책 등에 관해 몇 차례 보고를 했다.

평가교수단은 제2차 5개년 계획을 평가하게 됐는데 당시의 계획 편성 기법이란 매우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1962년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태국 방콕에서 연 계획 편성 기법에 관한 전문가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뒤인지라 제2차 5개년 계획의 편성방법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거시적 총량계획에 대한 실무자의 설명을 듣다 보니 너무나 단순한 허점이 눈에 띄었다. 계획문서 중에 계획상 정부·민간부문의 투자사업 일람표가 붙어 있었는데 그 리스트의 합계액이 총량계획의 총투자액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획사업의 합계액이 국내 총투자액과 같다면 계획 외의 비(非)계획 투자는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계획이나 예측으로 포착할 수 없는 비계획 부문의 투자가 많다.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석상에서 이것을 노골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망설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문제인지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즉, 총투자는 계획투자와 비계획투자로 양분될 수 있는데 총량계획에서는 비계획투자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실무자가 내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재검토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슬기롭게 넘어갔다.

투자계획 기본 요건도 안갖춰
평가교수로 참여해 문제 지적
회의때 朴前대통령과 첫 만남

그 당시 계획 기법수준은 대체로 이런 정도였다. 그러나 그 계획에 열거한 투자사업만 실행하더라도 경제성장 효과는 클 것이니 5개년 계획은 숫자보다 그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경제발전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회의석상에서는 1962년의 화폐개혁이 아주 단순한 경제이론을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설명한 적도 있다. 당시 화폐개혁의 기본취지는 부유층의 퇴장자금을 동결해 산업자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으로, 최고회의 모 재경위원은 “전체 통화량의 약 3분의 1은 화교들이 갖고 있고 그 규모는 1000억 환에 이를 것”이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에서 현금을 무이자로 퇴장할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으며 그렇지 않은 자금은 이미 각종 예금으로 은행에 들어가 있고 그 용도(대출)를 결정하는 것은 예금주가 아니라 은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1962년 6월 9일 통화개혁을 실시한 후 뚜껑을 열어보니 과연 음성자금도, 화교자금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예금동결을 해제했고 그에 따라 화폐개혁은 ‘환’을 ‘원’으로 바꾸고 화폐단위를 10 대 1로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실패한 화폐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은 서울의 모 대학에서 후진국 종속론을 강의해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교수로 알려졌다.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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