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4>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3시 01분


◇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지음/현암사

《“해마다 낙엽을 보며, 또 엄동에 까맣게 언 솔잎을 보며 느끼는 일입니다. 참삶이란 부단히 버리고 끝끝내 지키는 일의 통일처럼 느껴집니다. 신진대사가 순조롭게 이뤄져야 생명의 운행이 제대로 이뤄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가을의 낙엽에서는 버림, 청산을 결행하고 겨울의 얼어붙은 솔잎에서는 ‘극한의 역경에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라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침을 배운다’고 여기면서도 그게 쉽지 않고 버리기도 지키기도 힘들다는 점만을 알 따름입니다.”》

농사꾼이 수확한 삶의 지혜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를 중퇴한 저자는 고향인 경북 봉화군으로 낙향한 뒤 200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썼다. 안부를 묻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었다. 농촌의 애환, 노동에 대한 생각, 농사를 통해 터득한 자연의 이치, 그 이치를 토대로 본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이 책은 마치 철학자의 명상록과도 같은 그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그의 눈에 비친 농민의 삶은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는 삶이다.

“갈아엎은 땅에 골 짓고 망 지어 씨 뿌려 싹트면 매어 가꿉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곡식과 일심동체가 됩니다. 가뭄 타면 안타까워하고 병들면 울고 싶고, 싱싱하게 자라면 힘이 솟습니다. 그러면 농민들은 농사에 열중하게 되어 더위도 잊고 비지땀 흘리며 일에 몰두합니다. 때때로 농자금 모자라 빚도 지고, 허기도 지고, 농약 치다 병을 얻기도 하지만, 생산 과정에서는 나름대로의 재미와 보람을 느낍니다.”

추수한 곡식을 제값에 팔지 못해 속상할 때도 많지만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농사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노동이 고역스러운 일이 돼선 안 되며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경독(耕讀)의 일체화라고 여겨요. 참된 경(耕)은 독(讀)을 필요로 하며 독(讀)도 경(耕)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구실도 할 수 있겠지요.”

그는 자연의 이치에서 세상사의 지혜를 찾아낸다. 초겨울 쇠죽을 쑤려고 캔 쑥에 단단한 뿌리가 달려 있는 모습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확인하고, 계절의 리듬을 타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나무를 보면서 억지와 경쟁이 난무하는 인간 사회의 고달픈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씨앗에서 얻은 교훈을 아는 스님에게 털어놓는다.

“씨의 공통점은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기 쉬우며 땅에도 별 부담감을 주지 않습니다. 스님, 종교 교리와 민족 해방, 인간 해방이란 이론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씨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을 때 심어졌는지도 모르게 심어 그 사람이 씨를 싹틔워 키우고, 꽃피워 열매 맺게 한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러한 것이 진짜 같은데, 요사이 논의들은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슴에 심기보다는 짊어지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그 무슨 민주주의란 간판을 건 단체에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완전무결한 민주주의자가 된 것같이 여기는 것이 우리 실정 같다”며 유행을 좇아 흉내만 낼 뿐 알맹이는 부족한 세상을 꼬집기도 한다.

그는 투박한 사투리로 어울려 사는 삶을 강조한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가 없습니다.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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