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 연구]<18·끝>일제하 5일장 연구 허영란교수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7분


5일장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울산대 허영란 교수. 전영한  기자
5일장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울산대 허영란 교수. 전영한 기자
“총독부 ‘구시대 유물’ 억압에 집단농성 등 저항… 되레 늘어”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44)는 5일장(장시)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를 연구한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형성된 5일장이 당시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사학과 86학번으로 근현대사를 전공한 그에게 5일장은 일제강점기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존재다. 일제는 1914년 총독부령으로 ‘시장규칙’을 공포해 “원시적이고 낡은 조선의 유습(遺習)”이라며 5일장을 없애려 했으나 오히려 더 늘어났다. 1910년대 초 1000여 곳이었으나 1940년에는 1600여 곳이 됐다.

허 교수는 이에 대해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보통 사람들의 능동적인 행위가 표출된 결과였다”고 말한다. 5일장을 터전으로 살아간 지역 주민들은 철도나 도로 신설에 따라 장터를 옮기라고 하거나 비슷한 지역 내 다른 5일장의 시기를 동일하게 맞추도록 요구한 총독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고 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전국에서 주민들이 면장과 군수뿐 아니라 5일장과 관련한 최종 결정권자인 도지사를 찾아가 진정을 하거나 농성을 했다. 그가 국가기록원 자료에서 찾은 1941년 6월 경북 경주군 내남면 주민들의 경우처럼 시장 이전을 반대한다는 진정서를 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에게 제출한 일도 있었다.

1994년 박사 과정에 들어간 그는 11년 만인 2005년 ‘일제시기 장시(5일장) 변동과 지역주민’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일제강점기 5일장을 중심으로 사회를 분석한 학계의 첫 논문이었다. 그는 5일장과 주민의 관계를 미시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1900년경부터 1940년대 말까지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 기사 1만2000여 건을 조사해 지역별 사안별로 분류했고 중추원 등 총독부 산하 조사 기관의 자료를 더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박사 학위 논문을 포함해 지금까지 10여 편의 논문과 책을 펴냈다.

최근에는 개별 지역단위에서 일제강점기 철도부설이나 시가지 정비와 관련된 지역사회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있다. 경기 안성시의 사례를 다룬 ‘시가지 개조를 둘러싼 지역주민의 식민지 경험’이라는 2007년 발표 논문이 대표적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행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있는 그대로 봐야 역사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며 “5일장이나 학교설립 등에 조선인들이 적극 참여한 사실도 민족 운동만 강조하다 보면 평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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