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재발견 30선]<16>부엌의 문화사

  • 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8분


《여성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불을 때면서 가족들이 건강하고, 안락함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조왕신을 부엌 안에서 모시면서 가족의 복을 빌었다. 부엌은 여성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교제의 장이기도 하고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털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혼자일 때는 사색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집안에 목욕시설이 별도로 없었던 시절에 여성들은 부엌에서 사사로이 몸을 씻기도 했다.》

주방이 된 부엌, 주부들은 해방됐나

부엌은 다양한 일들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다기능적인 부엌은 ‘아궁이 부엌’에서 초현대식 ‘시스템 키친’까지 지난 100년간 부단히 변해왔다.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부엌 공간과 여성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부엌 생활의 변화를 살펴본다. 부엌이라는 창을 통해 한국 생활문화의 역사를 되짚어 본 것이다.

부엌은 원래 집 안의 중심에 있었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신석기 시대 수혈주거지를 가보면 당시 사람들은 집 한가운데 화덕을 놓고 주변에서 음식을 조리했다. 잠을 자는 공간과 음식을 짓고 먹는 공간이 구분되지 않았다. 철기 시대 이후 부엌은 거주지의 중앙에서 한쪽으로 비켜나지만 부엌은 집 안의 어떤 공간보다 밝은 동향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부엌은 햇볕이 적당하게 들어오며 통풍이 잘되고 여성들이 왕래하기 편리한 곳에 두었다.

최초로 현대식 부엌을 갖춘 서양식 주택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일본인의 이주로 일본식 주택이 세워지면서 주택 개량은 신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당시 주택 개량은 총독부가 주도하거나 남성 지식인이 더 활발하게 주장했다. 가옥을 개량할 때도 여성은 참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외국의 것을 무작정 모방하거나 외관을 중시하는 상품적 가치에 더 무게를 둔 개량이 이뤄졌다.

여성들은 외형적으로 개선된 집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부엌일을 하는 여성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개량은 오히려 개악에 가까웠다. 일제강점기 서민 주택의 부엌은 대체로 좁고 어두웠으며 환기도 잘되지 않았다.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연탄이 활발하게 사용되며 아궁이 구조가 바뀌었다. 나무를 때지 않자 부엌은 연기와 냄새에서 해방됐지만 일산화탄소라는 또 다른 위험요소를 갖게 됐다. 자주 닦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던 놋그릇 대신 양은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든 식기도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거실의 연장선에 부엌이 자리 잡으면서 주방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입식 주방이 실내로 들어오며 열린 공간이 된 주방에서 가족들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언제 어느 때든 드나들게 됐다.

1990년대 이후 주방은 전자레인지 토스터 오븐 식기세척기 등을 갖추며 단순 조리공간이 아닌 과학과 예술이 만나 기능과 미를 추구하는 장소로 바뀌기 시작했다. 주부들은 더 좋은 부엌 설비와 더 앞선 기술의 가전제품을 소비하게 됐다.

남녀평등 의식은 높아졌지만 주부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에서 보내고 있다. 주부들의 가사노동 강도도 크게 줄지 않았다. 부엌과 주방의 외형은 점점 더 과학적, 위생적으로, 아름답게 변화를 거듭한 반면 가족들이 엄마와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은 까닭이다. 저자가 주방이 휴식과 대화의 공간으로 자리 잡기가 만만찮을 것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염희진 기자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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