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국내작가 키워라’ 답은 뻔한데…

  • 입력 2008년 5월 24일 03시 01분


“난 그대 작은 창가에 화분이 될게요. 아무 말 못해도 바랄 수 없어도. 가끔 그대의 미소와 손길을 받으며, 잠든 그대 얼굴 한없이 볼 수 있겠죠.”(밴드 ‘러브홀릭’의 노래 ‘화분’ 중에서)

요즘 출판계에 때 아닌 열풍이 불었다. ‘알렉스 신드롬.’ 가수 알렉스가 ‘화분’을 노래한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읽은 그림책 때문이다. 교보문고 알라딘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유아용 서적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제목도 ‘훈남’스러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보물창고). 노래 ‘화분’도 이 책과 더불어 한창 인기다.

2006년 12월에 출간된 책이 지금 바람을 타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대 청춘 남녀들의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서”(최세라 Yes24 도서팀장)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막상 그림책 시장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좀 의아하다. 이 부문에서 ‘사랑해…’는 나온 지 1년 반이 됐는데도 신간이나 다름없다.

23일 ‘Yes24’의 유아 그림책 베스트셀러 20위권을 보자. 1위는 ‘사랑해…’. 하지만 그 책 이후에 출간된 책은 3권에 불과하다. 그나마 올해 4월 발간돼 19위에 오른 리처드 스캐리의 ‘와글와글 낱말이 좋아’도 미국에선 1963년에 나온 책이다. 이 책과 11위 ‘손톱 깨물기’(길벗어린이)가 올해 출간된 책이다.

나머지 중에는 10년 이상 된 것도 꽤 있다. 10위 ‘지각대장 존’(비룡소), 15위 ‘심심해서 그랬어’(보리), 16위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비룡소)는 1996∼97년 나왔다. 심지어 5위를 차지한 하야시 아키코의 ‘달님 안녕’(한림출판사)은 1988년에 출간된 것이다.

가장 어린 독자의 책들이 이렇게 곰삭은 이유는 ‘검증’ 때문이다. 최 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유아그림책은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에게 읽히기 때문에 아이의 사소한 반응에도 엄마들은 민감하거든요. 그 때문에 선배나 주위 어머니들의 추천이 매우 중요해요. 한번 뜬 고전이 계속 사랑받는 이유죠.”

근데 요즘 이런 고전(古典)도 고전(苦戰)을 면치 못한다. 이유는 ‘배 다른 형제’ 때문이다. 여기서 이복형제란 해외 원서 그림책을 말한다. 22일 오후 한 오프라인 서점 외국서적 코너에 나가봤다. 20, 30대 젊은 엄마들 대다수가 영어로 된 그림책을 고르고 있다. 기왕 그림책을 읽어줄 바에 영어공부도 일찍 시키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 국내에서 검증된 그림책의 원서를 해외 인터넷서점에서 직접 주문하는 엄마가 늘고 있단다.

출판계도 안타깝다. ‘위기일수록 투자하라’는 경영전략이 통하질 않는다. 이럴수록 국내 작가를 키워 양질의 그림책 시장을 만들면 좋으련만…. 하지만 “위험부담이 크다 보니 해외에서 이미 검증 받은 책만 선호하는”(조미현 현암사 상무) 경향이 커지고 있다.

‘사랑해…’에 나오는 대목 하나. “말썽부릴 때나, 심술부릴 때도 너를 사랑해. 네가 조용히 있거나, 재잘재잘 떠들어도 너를 사랑해.” 아이에게 우리 농산물 골라 먹이듯, 마음의 양식이 될 책을 고를 때도 우리 작가를 사랑해 주길. 신간도 돌아봐 주길. 출판사에도 어머니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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