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회화의 힘’ 보여주는 김홍주-최진욱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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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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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끝없는 물음 쉼없는 붓질

■ 김홍주 ‘시공간의 빗장풀기’전
세필 이미지 모여 큰 그림으로

■ 최진욱 ‘임시정부’전
낯선 두 그림의 절묘한 조화

고물상에서 사들인 문짝과 거울에서 틀만 남긴 뒤 나무 패널을 붙여 극사실적 인물과 풍경을 그렸다. 이때가 1970년대 중반, 뒤이어 오브제와 이미지가 공존하는 작업으로 회화와 오브제의 경계를 허물었다. 90년대 들어 초서체를 닮은 그림, 밭고랑에 조감도 같은 배열을 보여주는 풍경이 등장했다. 2000년대 거대한 캔버스를 세밀한 붓질로 채운 화사한 색감의 ‘꽃그림’으로 대중과 친해졌다. 요즘엔 좀 더 거친 붓질로 시작도 끝도 아리송한 ‘덩어리’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이 ‘2009 대표작가전’으로 마련한 김홍주 씨(64)의 ‘시공간의 빗장풀기’전. 유행에 눈 돌리지 않고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은 작가의 전환점을 되짚는 자리다. 다양한 문맥의 작업은 전통회화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자 ‘그린다’는 행위에 매달려 온 집념의 수확물이다.

예전의 익숙한 그림에서 탈피하려는 회화적 실험을 보여준 또 다른 전시가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갤러리 로얄에서 열리는 최진욱 씨(53)의 ‘임시정부’전. 모더니즘과 사실주의가 길항하는 그의 작품에도 회화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스며 있다.

한때 ‘회화의 종말’을 거론했던 세상과 맞서 온 두 작가의 작품에서 회화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치열하게 탐구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 몸과 마음이 함께 그리다

다양한 소재와 변화무쌍한 방식으로 전개된 김홍주 씨의 작업에서 한결같은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그린다’는 행위 자체다. 구상과 추상적 모티브가 스스럼없이 뒤섞이고, 오브제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등 관습과 타성에 딴죽을 건 그의 작업은 모두 회화의 본질을 향한 물음을 담고 있다.

떨어져서 보면 분홍색 고추와 초록색 배추 같은데 가까이 가니 오밀조밀한 풍경이 보인다. 논밭이 어우러진 지도 같은 풍경 안에 사람 얼굴이 보이는가 하면 밭고랑 중 일부를 떼어내니 서체 같은 그림이 탄생한다.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분해하고 재구성해 낯선 화면을 창조하는 작가의 세계는 감각의 ‘반복, 증식, 확장의 메커니즘’으로 일컬어진다.

기존의 독해를 뛰어넘는 작업이지만 작가는 지나친 개념적 해석을 경계한다. “내게 주어진 생활과 환경에 맞는 것을 선택해 가면서 작업을 해왔다. 머리가 먼저가 아니라 생활에 배어 있는 태도처럼 몸과 손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두뇌가 아닌, ‘몸과 마음이 같이 가는’ 작품이라는 것. 관람객에게도 ‘해석’이 아닌 ‘감각’으로 소통할 것을 당부한다. 실제로 작품의 매력은 깊은 손맛에서 우러난다. 수련하듯이 꼼꼼하게 가는 붓으로 캔버스를 채운 그림들. 그 속에 무수한 손놀림의 흔적, 필선의 맛이 돌올하게 떠오른다.

남들이 회화가 아직 유효하냐고 물을 때 우직한 농부처럼 ‘그림이 무엇인가’를 파고든 화가의 작품에서 회화의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12월 2일까지. 02-760-4850

○ 예술이 우리를 본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경계를 오가는 최진욱 씨는 구상이면서도 구상을 부정하고, 구상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다채로운 신작을 선보인 ‘임시정부’전에서도 그림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작가의 현재진행형 고민이 엿보인다.

임시정부 청사를 웃으며 나오는 모자와 청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다 풍경과 좌판을 들여다보는 노인들, 활짝 핀 매화꽃과 화가의 작업실처럼 크기도 다르고 내용도 딴판인 그림이 짝을 이룬다. 쉽게 다가서기 힘든 작품이지만 왠지 마음으로 스며드는 적막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이 우리를 보니까.’ 작가가 전시장에 걸어 놓은 화가 요제프 알베르스의 시 한 구절. 한데 작품을 푸는 열쇠는 나머지 구절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대상이 아니다/오히려 체험이다/우리가 예술을/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면/우리는 예술을/알아볼 수 있다.’

전시는 15일까지. 02-514-1248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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