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리멤버링…’-‘마그네틱 파워’ 展

  • 입력 2009년 5월 26일 02시 56분


亞!… 어쩐지 낯이 익더라
서울 곳곳서 만나는 日-아세안 미술
서구작품과 다른 인간적 면모에 끌려

재활용센터가 따로 없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의 전시장 입구에 빈 종이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 온갖 잡동사니에 비디오카메라가 뒤엉켜 있다. 바닥의 모니터에선 물감 튜브를 눌러 물감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장면이 되풀이되고, 벽면에는 한국의 거리를 배경으로 다 큰 청년이 실없이 노는 모습이 영상으로 비쳐 웃음을 자아낸다. 일본 작가 이즈미 다로의 비디오 설치작업(‘Hang Meat’)이다. 아이들 장난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미디어에 대한 조롱도 한 겹 깔고 있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한 작가가 빈 상자들을 테이프로 붙여 잇고 있다. 상자를 조금씩 움직이며 카메라로 찍는다. 정지 화면을 연결하니 마치 박스가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신기한 영상이 완성된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다구치 유키히로의 작품이다.

‘리멤버링-넥스트 오브 저팬’이란 주제 아래 6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갤러리(02-708-5015)와 루프(02-3141-1377)에서 동시에 열리는 일본 현대미술전의 현장이다. 20, 30대 신진작가 20명의 영상, 설치, 회화는 국내에 알려진 무라카미 다카시 등의 작업과 결이 다르다. 훨씬 실험적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파고드는 오타쿠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들 전시가 오늘날 일본 사회의 흐름을 엿보게 한다면 6월 8일까지 서울 삼청동 리씨, 한벽원, 도올 갤러리를 비롯해 서울 대학로 갤러리 정미소,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 등 9개 공간에서 열리는 ‘마그네틱 파워’전은 아세안 회원 10개국의 일상과 문화를 대면하는 자리다. ‘한-아세안 현대사진 미디어아트’전이란 제목으로 선보인 영상과 사진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동남아와 한국의 현대미술이 소통하는 문을 열어준다.

○ 아시아의 하모니

‘마그네틱 파워’전에는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10개국에서 20명, 이상현 구동희 김옥선 이재이 정연두 등 한국 작가 10명이 참여했다. 일부 국가에서 미디어 아트는 생소한 분야라 작품 편차는 있지만 다양한 문화를 미술적으로 접근하는 데 짱짱한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말레이시아의 이이란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물소 사진을 통해 기계가 모든 노동을 대신하는 세계화 시대에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반디 라타나는 캄보디아를 관광지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에 맞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흑백사진 시리즈 ‘자화상’을 내놓았다. 인도네시아의 좀펫 쿠스디낫난토는 과거의 유산과 기계문명이 뒤섞인 작업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찾고자 시도한다. 문화적 정체성을 짙게 드러낸 아세안의 작품에 비하니 한국 작가들의 작업은 세련되면서 서구적이다.

전시를 기획한 독립큐레이터 김유연 씨는 “서구 현대미술의 경우 높은 벽을 쌓고 있어 쉽게 접하기 힘들지만 아시아 작가의 작업은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배어 있어 친근하게 와 닿는다”고 설명했다. 한·아세안센터가 주최한 이번 전시는 토착 문화와 식민지 문화가 혼합되고, 전통적 가치와 세계화가 충돌하는 아시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02-2287-1115).

○ 낯선, 그러나 친밀한

서울 곳곳에서 만나는 이들 전시는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새로운 담론의 길을 열어준다. 김유연 큐레이터는 “아세안의 다양한 문화는 차이의 증거라기보다는 다양성과 창의성의 다면적 표현”이라며 “낯설지만 인간적 면모를 지닌 작품들에 대한 이끌림은 상호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주관적 영역과 사적 유희에 머물고 있는 일본 작가들의 작업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한국에 와서 만든 현장 작업도 많고, 작가 스스로 즐기는 작업 위주라 심각하거나 어렵지 않다. 다르면서도 어딘지 닮은 듯한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 가깝고도 먼 이웃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 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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