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의 그림읽기]‘엄마’라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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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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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Young Mother. 아트블루 제공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Young Mother. 아트블루 제공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면 어버이날입니다. 5월은 아시다시피 가정의 달이죠. 그런데 요즘 같은 저조한 결혼율에다 저출산 시대에는 예전보다 아이도 귀하고 어버이 또한 귀합니다. 자식이야 다 소중하지만 예전보다 더 희박한 확률로 만나게 되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얼마나 귀할까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아이들이나 모자(母子)의 모습을 많이 그린 화가입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기 전에, 혹은 젖을 먹이고 난 후에 흐뭇한 표정을 짓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이 그림을 보니 요즘 대한민국의 젊은 엄마들이 떠오르는군요. 예전에는 혼기가 차면 결혼을 했지만, 이제는 결혼도 출산도 선택이 된 시대의 여성들에게 ‘엄마’라는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던 옛날 할머니 세대의 ‘엄마’는 본능적인 모성애로 새끼를 온몸으로 먹이고 지켜주던 ‘짐승’의 차원이었다면, 그 후 ‘엄마’는 결혼한 여성의 사회적 ‘신분’ 정도로 인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요즘 젊은 ‘엄마’는 거의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보입니다. 아이가 하나나 둘이니 그 아이의 인생에 올인합니다.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뒤떨어질세라 경쟁적으로 교육적인 지원과 경제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제가 엄마를 하나의 직업으로 보는 데는 ‘전업 엄마’와 ‘부업 엄마’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전업주부’로서 적극적으로 아이에게 올인할 시간과 전문적인 정보와 경제적 능력을 갖춘 엄마의 부류가 ‘전업엄마’라는 직업이 아닐까 싶어요. 맞벌이 주부로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여성은 육아와 아이의 교육에 상대적으로 몰입도가 약하기 마련입니다. 가사와 육아를 직장일과 병행하면서 완벽하게 하는 ‘슈퍼우먼’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는 허덕거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직업을 갖지 않은 똑똑한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고 관리하는 게 더 뛰어난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게다가 대한민국의 교육이 끔찍한 입시 위주의 시스템 속에서 돌아가니 학원이나 사교육, 입시전략 같은 정보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그녀들은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동지의식과 일종의 직업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전업 엄마들은 정보전의 귀재들입니다. 이 똑똑한 엄마들은 아이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잘 훈련시킵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엄마들은 따라갈 수도 없고, 학교의 자모회나 동네 엄마들의 모임에 은근히 왕따를 당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정보를 공유한 그녀들은 잘나가는 학원 한 곳도 함부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녀들의 직업 노하우니까요.

그래요. ‘엄마’라는 직업은 일종의 생산직이며 관리직이지요. 생산한 ‘물건’은 교환 반품도 안 됩니다. 애프터서비스(AS)는 예전에는 한 25년 정도 해줬는데 요즘엔 무기한이라는군요. 노동 및 근무시간은 야근 포함해 하루 16시간 정도고, 정년도 없지만 월급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요즘 이런 힘든 직업을 택하는 여성들의 직업정신이 너무도 투철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물건’을 너무 사용하거나 과잉복무를 하는 것도 문제인 거 같습니다.

내 아이지만 내 ‘물건’이 아닌 아이, 아이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엄마, 이 두 존재가 5월에는 잠시 쉬며 칼릴 지브란의 명언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권지예 작가
#작가 권지예의 그림 읽기#르누아르#엄마#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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