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나의 글이 누군가의 양식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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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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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KING-고석원 그림 제공 포털아트
DOCKING-고석원 그림 제공 포털아트
법정 스님은 좋은 책은 거침없이 읽히되 읽다가 자꾸 덮게 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읽던 책을 자꾸 덮게 만드는 건 사유를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읽던 책을 덮고 조용히 앉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정신의 여백을 만드는 순간, 마음의 번잡과 망상은 가라앉고 참자아가 우러나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래서 양서란 거울처럼 자신을 제대로 보게 하고 정신을 일깨워야 한다고 법정 스님은 설파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날마다 세상에 쏟아집니다. 몇만 권씩 찍어대는 숱한 잡지와 몇천 부씩 발행하는 신간도서, 대기업이나 지자체에서 간행하는 홍보책자까지 합하면 세상에 가장 흔해빠진 게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 번 훑어보고 버리는 책, 책장을 넘기지도 않고 던지는 책, 제목만 보고 외면하는 책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읽을 책이 없어 이웃집으로 빌리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책을 소중하게 여기니 글을 소중하게 여기고 글을 쓰는 사람을 또한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책이 지천에 널리니 어느 누구도 예전처럼 책을 애지중지하지 않습니다. 책뿐 아니라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쏟아지는 글도 홍수를 이루어 활자 자체가 공해의 대상이 됩니다.

글은 곧 그 사람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예부터 글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중시했습니다. 글은 표현이지만 이면에는 침묵이 배음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래 부화하고 깊게 사유한 표현일수록 침묵의 여백이 크고 깊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책과 글이 홍수를 이루는 현대에는 침묵의 배음을 느끼게 하는 글, 읽다가 자주 덮게 만드는 책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장 그르니에의 ‘섬’ 같은 책에서 느껴지던 여백과 여음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글은 나를 거름 삼아 타인의 양식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의 이치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을 위해 자신을 죽이고 스스로 썩어 거름이 되는 과정은 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좌충우돌의 인생경험과 정신적 내출혈을 거치고도 오래오래 관조하며 침묵하는 가운데 비로소 작은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 넓은 세상의 양식이 될 수 있는 품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싯다르타’에서 ‘쓰는 것은 좋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더욱 좋다. 지혜로운 것은 좋다. 그러나 참는 것은 더욱 좋다’고 했습니다. 헤세의 말은 아직 익지도 않은 파편적인 생각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에 깊은 자성과 각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고 싶은 글, 생각하게 만드는 글, 뭔가를 변하게 만드는 글은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꾸며진 글이 아니고 과장된 글이 아니고 허세 부리는 글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반영하고 진실에서 우러난 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쓴 글 한 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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