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인생을 반영하는 걸음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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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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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시간속의 이야기, 최장한 그림 제공 포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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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공원으로 운동을 하러 갑니다. 운동을 여유 있는 사람의 호사로 여기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는 사람도 있지만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걷는 사람의 물결을 지켜보노라면 공원이 한껏 압축된 인생의 무대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운동을 끝내고 조용히 벤치에 앉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는 사람을 지켜봅니다. 앉아 있노라면 그래, 인생이 저런 것이려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일, 자신에게 맞는 보폭과 속도로 걷는 일, 자신이 취하고 싶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일이 곧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걸음걸이는 천차만별 각양각색입니다. 걸음걸이에도 표정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인생관이 있습니다. 지금 그 사람의 걸음걸이는 그 사람의 인생을 압축한 동작입니다. 걸음걸이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곧 인생의 반영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이 전방을 지향하므로 걸음걸이는 스스로 볼 수 없는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거울을 보고 워킹을 연습하는 모델은 인위적인 걸음걸이를 배우니 인생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와 거리가 멉니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걸음걸이를 보는 일, 자신의 인생을 보는 일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는 인생에 대한 체념과 좌절을 반영하고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는 인생에 대한 당찬 의욕을 반영합니다.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가득하고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에는 증오가 가득합니다.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는 잘 가꾼 인생의 정원처럼 질서정연하고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는 불모지대가 된 사막처럼 황폐합니다.

마음의 향방을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걸음걸이, 과시욕으로 가득 찬 허세와 위선의 걸음걸이도 있습니다. 내부지향적인 걸음걸이가 있는가 하면 외부지향적인 걸음걸이도 있습니다. 오직 나를 위해 걷는 독단적인 걸음걸이가 있는가 하면 남과 함께 공존하고 싶어 하는 소박한 걸음걸이도 있습니다.

걸음걸이를 지켜보노라면 세상만사가 다 반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작 하나,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인생이 반영된다는 발견은 언행과 인생이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일깨웁니다. 걸음걸이가 너무 이상하다는 말을 들은 어떤 청년은 주변사람에게 동영상으로 자기 걸음걸이를 찍어달라고 해 직접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늘 똑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으로 본 걸음걸이는 펭귄처럼 우스꽝스럽고 기이했습니다. 혹독한 과정을 통해 걷는 자세를 교정한 뒤, 그는 단지 걸음걸이를 바꾼 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인생을 형성하니 어떤 걸음도 함부로 내디딜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걸음걸이는 자신을 비우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지금 걷는다,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면 중심을 잃지 않고 똑바로 걸을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인생을 산다,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면 부질없는 삶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그대가 내딛는 한 걸음, 그것이 곧 그대의 인생이 됩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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