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마음을 보여주세요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소풍 신삼선, 그림 제공 포털아트
소풍 신삼선, 그림 제공 포털아트
추운 겨울 어느 날, 달팽이 한 마리가 벚나무의 얼어붙은 줄기를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달팽이가 아주 느리게 나무를 기어오를 때 딱정벌레 한 마리가 나무의 갈라진 틈에서 고개를 내밀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빈정거렸습니다.

“이봐, 그래봤자 헛수고야. 아무리 올라가도 아직 버찌는 없다고.”

딱정벌레의 말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달팽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습니다.

“괜찮아. 내가 저 위에 당도할 때쯤엔 열려 있을 거야.”

어떤 아빠가 10대 아들에게 달팽이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겨울에 버찌를 향해 정진하는 달팽이의 노력과 인내를 가르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아빠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고 달팽이의 태도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안 먹으면 그만이지 그런 짓을 왜? 아들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많은 부모가 걱정합니다. 10대, 20대의 젊은이에게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도 인생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인내심 부족이 게임에서 생겨난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리셋 버튼을 눌러 다시 시작하는 게 버릇이 되니 인내심이 생성될 리 없다는 말입니다. 청소년의 자살도 게임처럼 자기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 하는 욕구일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아이들의 문제를 과녁으로 삼은 모든 화살은 어른에게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어른을 가감 없이 되비치니 인내심이 부족한 아이는 인내심이 부족한 어른의 반영입니다. 그리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출세를 하고 권력을 얻고 명성을 얻고자 하는 어른의 풍토가 고스란히 아이들의 의식세계로 투사됩니다. 어른을 본보기로 삼아 아이들은 고생하기 싫어하고 노력하기 싫어하고 남에게 기죽기 싫어합니다. 어른이 부정하고 부패하고 불성실한데 어떻게 아이에게 노력과 인내심이 생성될까요.

문제의 핵심은 버찌가 아닙니다. 하루하루 버찌의 계절을 향해 나아가는 달팽이의 자세입니다. 집중하고 몰두하는 하루하루가 버찌보다 더 소중한 결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투사되는 어른의 세계에서는 오직 버찌만을 노리는 소유욕만 팽배합니다.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무시되고 간과되고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그 과정이 인내심의 근거이고 본질인데도 그것을 무시하는 인생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찬양의 대상이 됩니다.

어느 날 자식이 달팽이처럼 길을 떠나겠다고 하면 딱정벌레처럼 만류할 부모가 많습니다. 쉽고 편하게 살아라, 세상을 왜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하는가? 부모의 마음을 앞세워 자식이 편하고 쉽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쉽고 편한 인생은 쉽고 편한 몰락을 불러옵니다. 달팽이의 자세를 비웃을 게 아니라 부모 스스로 달팽이의 자세를 보여주면 아이는 진정한 인내의 가치를 배우게 됩니다. 버찌가 아니라 버찌를 향해 가는 자세, 그것이 어른이 아이에게 베풀어야 할 진정한 사랑입니다.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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