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당신의 유토피아는 어디에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오후 2시경, 공원 벤치에 남자 둘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깔끔한 차림이라 직장인인 줄 알았는데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니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은 전직 직장동료 사이였습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주변에 벚꽃이 만개한 벤치에 앉아 있다가 나는 두 남자의 얘기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만둔 회사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몇몇 인물이 야합해 회사를 부당하게 운영하고 부조리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면서 나머지 직원을 들러리로 만드는 모순된 구조에 대해 그들은 더럽다, 더럽다는 말을 연발했습니다. 하지만 더러운 상황을 개선하기에 힘이 너무 미약하다고 말하며 먹고살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둘 중 하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런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아, 짜증나! 어디 이런 걱정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세상은 없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선의 세상, 이름 하여 유토피아에 대해 인류는 오래전부터 사고의 장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사는 ‘지금 이곳’이 디스토피아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유토피아의 의미가 ‘어디에도 없는 장소(nowhere)’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현실이 어렵고 괴로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상향을 꿈꾸곤 합니다.

당신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무엇인가요? 나는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평소 꿈꾸어 오던 이상향의 조건을 열거했습니다. 모두 다른 내용이었지만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없는 것, 예컨대 범죄가 없는 세상, 빈부격차가 없는 세상, 학력차별이 없는 세상, 예쁜 것을 밝히지 않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폭력이 없는 세상 등등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의 반대급부가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의 조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상상합니다. 지금 여기 없는 것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을 살면 사람들은 오래잖아 싫증을 느끼고 권태를 느껴 유토피아를 디스토피아로 인식할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조용하고 따분해 미치겠다며 충돌과 쟁투와 다툼이 있는 세상을 유토피아로 갈망할 게 뻔합니다. 그때 당신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무엇이냐고 다시 물으면 그들은 ‘지금 여기 있는 것’의 목록을 유토피아의 조건으로 제시할 것입니다.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는 장소가 아닙니다. ‘nowhere’라는 단어를 두 토막으로 나누면 답이 나옵니다. 지금 여기, ‘now here’가 바로 nowhere의 이면 세계입니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지금 이곳’의 이면에 유토피아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관하거나 도피하거나 일탈하지 말고 이면 세계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지금 여기, 나에게 주어진 문제가 나를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이정표이기 때문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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