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혼자 차 한잔 드세요

  • 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세상살이는 곧 사람살이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관리하고, 사람을 통해 원하는 일을 이루어 나갑니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을 상상하면 사람살이가 참 다행스럽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반영하듯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목록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시하여 애인, 직장동료, 친구, 학교동창, 심지어 거래처 사람들의 전화번호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는 그 사람의 세상살이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전화번호부가 세상이 되고, 전화번호부가 자서전이 됩니다.

버스에서도 전화하고 전동차에서도 전화하고 걸어가면서도 전화합니다. 심지어는 찜질방에서도 전화하고 화장실에서도 전화합니다. 쉼 없는 교신은 무수한 만남을 계획하거나 실행하게 만들고 그러는 와중에 일상의 여백은 점점 줄어듭니다. 평일에는 평일이라서 만나야 할 사람, 주말에는 주말이라서 만나야 할 사람, 낮에는 낮이라서 만나야 할 사람, 밤에는 밤이라서 만나야 할 사람…. 사람을 만나기 위한 구실로 만들어진 날들도 참 많습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와인데이, 실버데이, 로즈데이, 삼겹살데이, 추어탕데이…. 세상살이가 곧 사람살이라는 말은 문화를 넘어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만나는 사람의 수와 행복지수는 무관합니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행복해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몇 배나 더 소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오히려 마음이 더 허전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진실을 위배하는 말을 하고,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고, 남을 헐뜯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사람에 에워싸여 사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공허가 깊어집니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 정작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만남의 허상을 부풀려 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와 사람살이의 중심은 ‘나’입니다. 하지만 세상살이와 사람살이의 늪에 허우적거리며 나를 만나지 못하고 사는 날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과의 무절제한 만남은 중독을 불러오지만 나와의 지속적인 만남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게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나를 만나지 못하면 나는 한낱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점심식사를 끝낸 여분의 시간, 혹은 자투리로 얻은 몇십 분의 시간에 혼자 찻집에 들어가 자신을 위해 차 한잔을 주문하세요. 그리고 조용히 찻잔과 마주앉아 세상의 원점인 나를 들여다보세요. 세상살이의 중심, 사람살이의 중심, 그 사람과 나누는 차 한잔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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