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고향이 타향보다 낯설때도 있습니다

  • 입력 2008년 1월 26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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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연어’, 그림=한병호, 문학동네
‘그림책 연어’, 그림=한병호, 문학동네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남대천을 기억하십니까.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남대천으로 찾아간 사람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 연어를 포획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홍두깨 크기만큼 자란 그 연어들은 원래 남대천 여울머리 어디쯤에 있는 돌 틈에서 부화되어 연약한 치어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헤엄치는 것을 익힌 뒤, 곧장 바다로 나가 3, 4년 뒤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태어난 고향에서 1만수천 km나 떨어진 드넓은 바다를 헤매면서 상어나 물개, 고래와 같은 포식자들에게 쫓기고 위협당하면서 성장해 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다 속 어디 안 간 곳 없이 맘대로 헤엄치며 살던 연어가 어째서 몇만 km나 되는 고향 길 여정에 오르기로 결심한 것일까요. 그것은 오직 고향에서 자손을 낳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해야겠다는 한 가지 염원 때문일 것입니다. 연어가 겪어야 할 역주행의 숨 가쁜 여정에는 그러나 숱한 좌절과 치명적인 장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물살이 치솟고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협곡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키보다 수십 배나 큰 폭포를 수십 번이나 뛰어넘어야 합니다.

실패하면 다시, 그리고 실패해도 또다시 결행하기를 단념한 적이 없습니다. 여울 굽이마다 겨울잠 들기 전에 영양분을 비축하기 위해 눈이 시뻘건 포식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그 몇 년 사이에 댐을 건설해서 그들의 진로를 차단해 버리기도 합니다. 남대천의 경우처럼 그물과 투망으로 연어를 잡아 배를 눌러 억지로 알을 짜내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가을이 되면 관광객들까지 몰려와서 연어를 손으로 잡겠다고 물 속에서 길길이 날뛰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태어난 고향에서 알을 낳고 싶어 했던 연어의 마지막 여정에 기다리고 있는 눈물겨운 모습들입니다. 그곳의 잔잔한 여울 속에 누워 그 생애를 마감하고 싶은 비극적인 바람조차도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철부지 시절 부모를 따라 먼 도시로 이주해온 뒤로 세상을 말똥처럼 구르며 살다가 눈바람 휘몰아치거나, 삭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문득, 무작정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오를 때가 있습니다.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허공에 몸을 내맡기고 살아온 허망한 가슴에 한줌의 위안을 찾자는 소박한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극적인 삶을 마감해준 연어들의 고향처럼, 인간의 고향에도 낯선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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