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바다에서 춤추는 고래도 원래는 …

  • 입력 2008년 1월 5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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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춤추는 고래도 원래는 나무였습니다

바다에서 춤추는 고래는 뭍으로 올라와 해바라기하며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꿈이 있듯이, 산기슭 깊은 계곡에서 하늘만 바라보며 오래 서 있는 나무에게도 고래처럼 넓은 바다로 뛰어나가 파도를 헤치며 달리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과 달리 몸뚱이는 바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수천만 년 동안 산기슭 깊은 곳이거나, 삭풍이 몰아닥치는 산등성이 위에서만 궁색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턱밑으로 바라보이는 길고 긴 강줄기를 따라가면 필경 바다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자손손 끈질기게 가지를 뻗고 잎을 피워 열매를 맺으며 꿈을 키워 왔으나, 태어난 그 자리에서 바다 가까이로는 단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어 달이 뜨면, 나무는 울음소리를 바람 속에 담아 멀고 먼 강물 위로 서러운 편지를 띄웁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만 바라보며 가지를 뻗는 듯한 나무의 겉모습만 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나무의 줄기보다 몇 배나 더 깊고 길게 땅 속으로 자라는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가 찾고 있는 땅속의 수맥은 강줄기와 맞닿아 있고, 그 강줄기는 멀리 흘러가서 바다와 마주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뿌리는 온갖 고통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지치는 법이 없이 곤충의 지느러미처럼 섬세하고 예민한 촉각으로 수맥 속의 자양분을 찾아 지하의 어둠 속으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결국은 꿈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각고 끝에 드디어 바다와 만나게 된 나무는 이제 그 튼튼한 뿌리를 접거나 포개어 물 샐 틈 하나 없는 튼튼한 범선의 선체가 되어 줍니다. 줄기는 돛대가 되고 잎들은 저마다 달려와 돛이 되었습니다. 바람에 떠밀린 범선은 잔잔한 파도 위로 미끄러지듯 달려갑니다. 이제 뿌리는 수맥을 찾느라 성가심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나무의 어린 줄기와 잎은 범선의 난간에 기대어 불어오는 순풍에 볼을 내맡기고 나른한 졸음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난데없는 큰바람이 불길같이 아우성치며 일어나더니 바다가 미친 듯이 들끓었고, 범선은 순식간에 거칠고 억센 풍랑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풍랑이 가라앉은 뒤에 발견된 범선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오히려 집채만 한 크기의 향유고래로 변신하여 해안 모래 벌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향유고래로 변신한 이후에도 곧장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또다시 나무로 변신하여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 수맥을 찾아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향유고래를 해안가로 떠밀어 준 것이지요.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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