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의 지평선]나는 열망한다, 경계없이 탁트인 대지의 역사를

  • 입력 2008년 3월 25일 03시 00분


다시 오는 봄을 맞아 고은 시인은 역사에 대해 성찰한다. 그는 ‘시대구분론’으로 제한된 역사가 아니라 탁 트인 대지와 해양, 대기 속의 역사를 열망한다. 고은 시인이 그릇 속에 봄의 기운을 담은 그림을 그려 보내왔다.
다시 오는 봄을 맞아 고은 시인은 역사에 대해 성찰한다. 그는 ‘시대구분론’으로 제한된 역사가 아니라 탁 트인 대지와 해양, 대기 속의 역사를 열망한다. 고은 시인이 그릇 속에 봄의 기운을 담은 그림을 그려 보내왔다.
고비 사막에서 물이 동났다. 목이 탔다. 어린 목동으로부터 물 한 그릇을 얻어 마셨다. 생명의 물이었다.

제주 서두부 방파제에서 태풍의 파도 기둥 15m에 자칫 휩쓸려 죽을 뻔했다. 죽음의 물이었다.

그 뒤 책을 읽었다.

‘최고의 선(上善)은 물이다(若水)’는 물의 모든 것을 감당한 비유가 되는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실은 나일 강이 범람할 때의 인명 희생이나 재산 유실과 그 홍수 뒤의 비옥한 농토에 이룩한 풍작 어느 한 쪽만을 말하는 것이다.

고전 속의 금언들이 이토록 온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고전을 넘어서는 힘이다. 언어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언어는 다른 언어를 쌓아간다.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는 5월의 꽃을 데려온다고 한다. 아니겠다. 온난화는 제주도 유채꽃을 한 달이나 일찍 데려왔다.

지난날 1월의 제주도 밭두렁. 거기에 나온 아이들이 빨갛게 언 얼굴로 추워할 때 저만치서 그 추위에 떨고 있는 수선화는 애처로웠다. 2월이면 벌써 산당화가 와 있다.

그런 꽃들이 바다 건너 국토의 남녘 솔밭머리에 온다. 서 있는 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앉은 영춘화가 온다. 진달래 개나리가 서로 시새우듯 온다.

저 1940년 식민지 산등성이에는 진달래가 모자랐고 1950년대 전란 뒤의 황토언덕에는 개나리가 드물었다. 1970년대 말 개나리가 먼저 피고 진달래가 나중에 피었다. 그해 긴 독재정권이 끝났다.

이제 진달래나 개나리가 지천이다. 지천이어서 사람들의 눈에 좀 시시해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내 조상의 반도에 봄이 오고 봄의 꽃이 온다. 와서는 꽃대궐과 꽃마을을 이루어준 뒤 미련 없이 북으로 북으로 가 저 압록강 중강진에 닿는다. 가장 늦은 진달래로 그곳 손님이 되는 것이다.

오랜 화신북상(花信北上)이다.

가을이면 봄의 꽃 소식을 거슬러 단풍이 온다. 저 두만강 헐벗은 무산 언저리로부터, 아니 백두산 밑 삼지연 숲으로부터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기어이 내장산 단풍의 천하명품을 만들어낸다.

그러다가 물 건너 제주도 탐라계곡이나 남쪽 돈네꼬 골짝 그윽한 단풍으로 머무는 것이다.

봄꽃과 가을단풍의 이동은 어느덧 이 나라 자연의 척도가 되고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의 도량형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봄 처녀 가을 총각의 사람꽃 사람단풍의 계절을 살아온 것이다.

계절을 철이라 한다. 사르트르의 소설 중 ‘철들 무렵’이 있다. 철이란 계절이나 세월 따위의 시간의 생태를 뜻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체험적 성숙을 뜻하게 되었다. 먹을거리도 사물에의 탐구도 제 철을 만나야 한다.

허나 지금 세계는 이런 철이 없는 세계이다. 심지어 어느 공원 노인들은 아이들만도 못하게 철이 없다. 어찌 그네들뿐이겠는가. 세계의 큰 나라들이 작은 나라보다 훨씬 속이 좁고 철부지이다.

역사는 혼자가 아니다. 이 역사에 대하여 그 누구나 역사가가 아닌 자 없으리라. 시골의 할머니와 토인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역사가이다. 하나는 구어(口語)로 역사를 살고 하나는 문자언어로 역사를 사는 차이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모두 삶의 진실을 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거짓투성이를 버젓이 내놓은 역사행세가 있다. 아니, 이런 사태를 두고 거짓말이 들어 있지 않은 역사는 지루할 뿐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뿐 아니라 인류 수천 년의 역사는 수백만 년의 긴 선사(先史)에 빚지고도 오만한 자기서술에 갇혀 있다.

선사시대에는 역사가 없다는 따위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브로델은 경고하고 원시인들에게도 역사의식이 있노라고 한 실존주의 작가는 돌아다보았다.

문자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는 역사론은 분명히 닫혀 있다.

상고시대 동양 농경사회에서 어느 놈이 왕인지 알 수 없이 가을의 격양가를 불렀던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가 아니라 차라리 역사로부터의 자유를 터득한 원시의 무애일 것이다.

역사는 시대구분론의 제한구역 안에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정시의 ‘영원’과 같은 길이로 길고 긴 것이다.

어쩌면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선(線)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선 위에서 인간은 한갓 극소의 점(點)으로 살아 있다.

역사가 세계를 여는 행위이기를 지향할 때 이제까지의 세계를 구분하고 배제하는 일국주의의 극복이 가능하다.

이제 더 이상 일국의 역사는 없다. 내 조국의 역사는 세계 내 존재의 역사 없이, 자연사 우주사의 상황 없이는 질식하고 만다.

바라건대 이제까지의 경계지운 역사가 이 나라 탁 트인 대지와 해양 그리고 대기 속의 대역사를 나는 열망한다. 그 안에 인간과 인간 이외의 삶과 여러 미세 활동들을 그려내고 싶은 것이다.

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을 경멸한다. 그 책의 몇 군데에 보이는 예리한 지적을 넘어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더 이상의 역사가 없다는 주장은 어쩌면 이로부터 미국 신자유주의 주도로 천년만년 태평성대의 ‘비역사’로 굴러갈 것을 획책하는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그런 역사의 끝이란 말인가, 내가 굳이 말하는 것은,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는 진리다.

지금의 세계화는 반드시 또다른 세계사적 국면으로 나아가며 커다란 모순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지난 20세기 역사보다 더 격동적이고 역동적으로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런 점에서 내 아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의 종언은 어리석다. 미래의 역사행위에 대한 불효이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불효보다 더 나쁘다. 한 마디 첨가한다. ―지금의 민주주의와 다수결이란 정치제도 역시 항구적이지 않고 역사 속의 한 ‘철’인 것이다. 그 이후를 예감하라.

고은 시인·서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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