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문화 쟁점]<1>문화재

  • 입력 2008년 1월 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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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창조적인 발전을 위해 늘 변화한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하나의 이슈가 만들어지고 그 이슈를 넘어 미래로 나아간다. 2008년에도 우리 문화계에선 다양한 이슈를 놓고 뜨거운 토론과 논란이 이뤄질 것이다. 문화재, 공연, 영화, 미술, 문학출판 등 분야별로 올 한 해의 이슈 점검을 통해 발전적인 대안을 모색해 보는 기획 시리즈 ‘2008 문화 쟁점’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문화재는 잘 보존해 후손에 물려 줘야 할 삶의 기록이고 역사의 증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국 곳곳에서 사유재산권 보호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문화재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 분야에서 올해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는 근대문화재 보호와 발굴 제도 개선을 꼽을 수 있다. 국민의 재산권도 보호하면서 우리 문화재를 지켜낼 만한 묘안은 없을까.

○ 사라진 ‘못난이 3형제’ 인형

근대문화유산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웅변한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산업화, 도시화 등 급변했던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인 근대문화유산은 예술적 가치보다 역사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근대 건축물은 훼손되고 근대 유물은 사라지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서울 명동의 옛 대한증권거래소 건물, 충무로의 스카라극장 등 유서 깊은 근현대사의 현장이 파괴됐다.

한국 산업사를 대변하는 자동차 기업들의 첫 모델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실정이다. 최초 국산차 시발자동차는 이미 국내에서 사라졌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소장은 “자체 박물관을 갖춘 세계적 자동차기업과 달리 우리는 만들어 팔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시대 문화를 상징하는 일상 유물의 실종 실태는 더 심각하다. 국립민속박물관 기량 학예연구관은 ‘못난이 3형제’ 인형을 예로 들었다. 1970년대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누구나 가졌던 인형을 백방으로 찾았지만 인형 3개 한 세트를 갖춘 경우를 찾기 힘들었다는 것.

근대 문화재 훼손은 “문화재는 수백 년 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근대문화유산도 100년, 200년 뒤 중요한 문화재가 된다. 근대문화재는 지금 지켜야 할 ‘미래문화재’다.

○ 철도 자동차 만화 공예도 문화재로

문화재청은 2001년 보존 활용 가치가 큰 근대문화유산을 문화재로 관리하는 ‘등록문화재 제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 건축물에 집중돼 20세기의 대표적인 ‘미래문화재’의 훼손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올해 등록문화재 대상 범위를 자동차, 철도, 전기통신, 6·25전쟁 유적지, 근현대 회화와 공예, 문학 만화 잡지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자동차 중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탔던 캐딜락(1954년 제작) 등 역대 대통령의 차들이 ‘미래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첫 국내 기술력으로 만들어 ‘마이카시대’를 연 포니(1975년 제작)와 1970년대 새마을운동 현장을 누빈 국산 픽업트럭 1호 모델인 새마을트럭(1974년 제작)도 보존 대상이다. 심각한 부식으로 훼손 위기에 처한 1940, 50년대 증기기관차들, 1960, 70년대 삶을 상징하는 전당포 정미소 대장간 등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이런 제도에도 불구하고 훼손이 멈추지 않은 이유는 근대문화재를 개인의 소유물로만 여기는 탓이다. 김성범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장은 “최근엔 보상을 위해 등록문화재를 신청했다가 보상을 받고 나면 취소하는 제도 악용 사례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위원 김정동(건축사) 목원대 교수는 “선진국은 개발지역의 근대 건축물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지역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재산권을 보장하면서 제도 악용을 막고 이 지역을 역사 문화 관광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발굴 비리 예방도 시급

매장문화재 발굴제도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문화재청이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개선안을 발표하자 고고학계에서 이를 매장문화재 파괴라고 비판하면서 갈등을 겪었다.

문화재청은 3월 이후 고고학계 사업시행자 지방정부 등이 참가하는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검찰이 10개 민간 발굴 기관의 비리 혐의를 수사하기도 했다. 이들 기관들은 민간 건설사업 시행자에게서 받는 발굴 비용을 횡령하거나 전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같은 ‘발굴 비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등 국책사업의 증가로 발굴량에 비해 발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시행될 경우 대운하 구간에 있는 유적만 170곳에 이른다는 분석처럼 올해도 발굴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 발굴 비리를 예방하는 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병현(숭실대 교수) 전 한국고고학회장은 “발굴조사전문기관을 공영체제로 전환해 투명성과 공공성, 조사연구원의 신분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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