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27>이것이 인간인가

  • 입력 2008년 2월 15일 02시 59분


《“자신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이성적일 수 있는 인간은 매우 드물다. 운명이 위태로울 때 사람들은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 두 부류가 그렇게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대화 상대와 상황에 따라, 기억도 일관성도 없이 두 극단적인 입장 사이에 동요하기 때문이다.”》

- 김주영 작가 추천

무력감 빠진 국민 일어서게 만드는 지도력

누구라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운명. 죽음의 수용소에서 동료는 하나 둘 가스실로 향한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 탄압의 총부리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당연히 환호하며 바깥세상을 향해 내달릴 듯하다. 하지만 수감자들은 선뜻 나가지 못한 채 운명을 기다릴 뿐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 폭력과 억압이 체화된 삶에서 자유는 오히려 불안의 기폭제가 됐다. 아우슈비츠에서 이런 상황을 체험한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 인간이다.”

김주영 작가가 이 책에서 주목한 대목도 이 지점이다. “어느 순간 고통이 일상화되면 인간은 더 나은 현실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무력감에 익숙해진 한국인에게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의 체험을 담은 기록이다. 이탈리아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뒤 1943년 12월부터 1945년 1월 러시아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킬 때까지 겪은 ‘노예보다 못한 삶’을 글로 옮겼다.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 건 전쟁의 처참함이 아니다. 가스실 풍경을 자극적으로 풀어 놓지도 않는다. 저자의 눈은 ‘스스로 무너지는’ 수용자들의 변화에 머문다. 한없이 지속되는 고통은 더는 고통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그저 상황에 맞춰 살아갈 뿐이었다.

수용소에서 배급되는 음식에 대한 이들의 대응은 그 정점이다. 양배추와 무 조각이 전부인 ‘죽’은 먹을 게 못되는데도 탐욕의 대상이 된다. 배급량이 다가올 죽음보다 중요해졌다.

“(가스실행) 수용자에게는 두 배의 죽이 배급된다. 그날 치글러는 반합을 내밀고 보통 양의 배급을 받은 뒤 가만히 기다리고 서 있었다. 치글러는 밀쳐 쫓겨났지만 다시 돌아와 계속 고집을 부린다. 그의 카드가 왼쪽으로 넘겨졌고 모두 (가스실행이 적힌) 그것을 보았다. 배급이 정확히 주어지자 치글러는 죽을 먹으러 조용히 침대로 간다.”

책의 미덕은 저자가 결코 자기 연민에 휩싸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매서운 고통에 대한 분노와 번민이 뒤엉킬 때도 있지만 문장은 절제를 잃지 않는다. 극한의 폭력에 노출돼 스스로 무너지는 인간과 그 과정이 몸서리치게 다가온다.

저자는 집으로 돌아와 악몽을 전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무관심해진다. “마음속에서 황폐한 슬픔이 서서히 자라난다.” 40년에 걸친 증언에도 커져 가는 절망. 1987년 4월 11일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저자의 경험은 특별한 것이다. 평범한 이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밑바닥까지 내던질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그런 일이 닥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진짜 무서운 것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인간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