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답사기 30선]<24>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 입력 200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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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를 떠나며 깨닫는다. 그림자를 없애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몸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임을. 그림자와 싸우지 않고, 그림자를 만드는 몸의 실체를 고요히 바라봐야 하는 것임을.》

티베트, 상처받은 영혼의 정화

왜들 이러나 싶을 만큼 얼마 전부터 많은 이가 티베트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티베트란 나라 이름 앞에는 당연한 듯 ‘그리운’이라는 형용사가 빠지지 않았고 이야기가 무르익을라치면 ‘세상 모든 바람이 모이는 곳’이거나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거나 ‘가없는 사랑과 치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로,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 달라이 라마의 고향’으로 이어졌다.

결론은? 모두 “죽기 전에 꼭 한 번 티베트에 가고 싶다”는 것. 요가와 영성과 기쁨의 나라, 인도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수그러들 즈음이었다. 배낭 여행으로도, 순례 여행으로도 인도에 못 가본 탓이었을까. 인도나 티베트 이야기만 나오면 은근한 열패감과 주눅이 들어 눈 둘 곳이 없었다.

“왜 하필 티베트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티베트 문화 기행서의 저자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니까 바보가 많을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한다. 이미 ‘티베트의 아이들’을 펴냈던 그녀는 차밭의 고향에서 태어난 사람답게, 그리고 명상 잡지를 만들던 사람답게 경쟁과 빠른 속도와 이기적인 욕망이 휘몰아치는 이 풍토에서 탈진했으리라. 아무리 사랑의 마음을 품고 천천히 살고자 마음먹었더라도 초발심을 온전히 지키기가 버거웠으리라. 티베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진정한 바보’를 만나고 싶어서, 사랑을 배우고 싶어서 거의 생명을 걸고 허락도 없이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티베트로 깊게 들어간다. 이 책에는 나라와 고유문화를 빼앗긴 채 오직 불교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만을 가난한 몸에 품고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공감이 눈물을 적실 만큼 절실하게 묻어난다.

저자는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를 오르고 죄를 씻어 준다는 호수에서 몸을 씻는다. 티베트 곳곳의 삶과 문화를 만나면서 상처와 분노 그리고 자학의 끝의 허망함을 본다.

아무려나. 인도와 티베트를 말하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기 전에 그곳을 향해 떠났고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그들 모두가 사랑을 배워온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난 인도도, 티베트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건 “정녕 사랑을 배워 왔으면 그 사랑을 보여 보라”고 그들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며 따져 묻는 마음의 내 꼬락서니다.

저자는 홈페이지에 이렇게 써 놓았다. “사랑은, 한번 익히고 나면 평생 잊지 않는다는 자전거 타기나 은행원들이 돈을 부채처럼 펴서 세는 기술과는 다르다. 사랑은 배우고 나서도 자주 넘어진다. 때때로 화가 나고 미워지고 원망스러워지는 건 사랑의 반대편에 선 감정들의 습(習)이 너무 깊은 까닭이다”라고.

생전 처음 나도 사랑을 배우고 싶어 티베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야말로 죽기 전에.

권혁란 이프 출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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