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여행을 배경으로 한 음악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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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의 추억을 더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관광지에서 박은 사진,

빛바랜 열차티켓, 여권에 찍힌

출입국 흔적들…. 그중에서 청각에

저장된 노래는 유통기한이 좀 길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여행가방을 정리하던 중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MP3 플레이어를 찾아냈다.

이상은의 ‘파라다이스’, 재주소년의

‘로드무비’, 하림의 ‘여기보다 어딘가에’….》

들리나요? 추억의 파도소리가…

파리의 베르 갈랑을 걷던, 런던의 피카디리 서커스를 지나던, 그 순간들은 여기 담긴 노래들로 되살아났고, 여행의 여운을 곱씹으며 잠시나마 행복했던 것 같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이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를 통해 불쑥 튀어 나오듯, 노래에는 묵혀둔 감정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가끔 이렇게 ‘여행모드’에 빠지게 하는 노래들이 있다. 아일랜드의 거리로 날 인도해준 것도 ‘두번째 달’이었다. 들뜨고 부산스러운 여행전야 같은 1번 트랙 ‘여행의 시작’부터 눈앞에 금방이라도 바다가 펼쳐질 듯한 ‘바다를 꿈꾸다’까지. 이른바 ‘방랑음악’을 표방하는 ‘두번째 달’은 자신뿐만 아니라 노래를 듣는 사람들까지 행복한 방랑자로 만든다. 이들은 영화 ‘원스’처럼 스스럼없이 거리에서 버스킹(busking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재작년과 작년 여름엔 아일랜드로 연주 여행도 떠났다. 길 위에서 번 돈으로 3주를 버틴 경험은 고스란히 이번 프로젝트 앨범(Vol.1 traditional tunes)에 담겨 있다. 이들의 방랑기는 얼마 전 음악 다큐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로도 제작됐다.

노래를 통해 오키나와의 바다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이상은의 13집 ‘더 서드 플레이스’를 들으면서. 그는 이 앨범 작업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에 머물렀다.

“오키나와에서 한 일이라곤 하늘의 구름 지나가는 거 보기, 바다 색깔 변하는 거 보기, 노을이 지는 풍경 보기,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였어요.”

그의 한가했던 오키나와 체류기는 ‘제3의 공간’ ‘삶은 여행’ ‘바다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물 잉크로 쓴 시/길을 잃은 멜로디/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삶은 여행 중)

루시드 폴은 좀 다르다. 그의 3집 ‘국경의 밤’엔 고국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루시드 폴은 스웨덴과 스위스 등 이국에서 5년째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그에게 이국에서의 생활은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덤덤한 일상일 뿐이다.

혼자 남은 타향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는 ‘마음은 노을이 되어’는 쓸쓸하다 못해 처연하다. “마음은 노을이 되어/나는 어느 곳에 있어도/고향을 물들이겠지….”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었네’에서는 부당한 노동에 허덕이던 중동의 14세 소녀가 울부짖는다. “난 사람이었네/어느 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난 사람이었네.”

한국 가요가 지극히 통속적이라고? 그건 닳고 닳은 사랑의 감정이 지겹게 반복되는 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국 가요엔 대체, 배경이라는 게 없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졌는지는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공간적 시간적 배경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모든 것은 클리셰(상투적 표현)로 가득 찬 드라마처럼 천편일률에 상상력과 감수성은 턱없이 빈곤하다.

지금이라도 이국의 낯선 풍경으로 데려다줄 이 노래들을 들어보자. 이 노래들로 당신은 ‘아주 싼값에’ 오키나와의 바다 혹은 아일랜드의 그 거리로 떠날 수 있다. 단 눈을 꼭 감을 것. 눈앞에 버티고 있는 도시의 탁한 풍경 탓에 노래의 감흥을 망칠 수도 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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