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때는 양희은, 트윈폴리오 등 포크송 시대가 열렸는데 신중현이 TV 출연 금지를 당하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신중현 흉내 한번 안 내 본 남자는 없을 것이다. 여자들, 그리고 요즘 세대는 이해 못하겠지만 그땐 남자들에게 기타를 들고 대중 앞에 서서 주목받는 데 대한 환상이 있었다. 스타에 대한 선망을 처음 가져 본 대상이 신중현이었다. 골방에서 신중현의 ‘늦기 전에’ 기타 코드를 연습하며 무대에 서는 상상으로 지새운 밤이 부지기수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였다. 활동을 중단했던 신중현이 1980년에 ‘아름다운 강산’을 들고 돌아왔다. 국수적인 노래였지만 록의 파워가 물씬했다. 암울한 시대를 노래하는 허무가 짙게 밴 이전 노래들과 달리 ‘아름다운 강산’에서는 그의 음악이 긍정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올해 은퇴를 위한 전국 투어를 한다고 하는데, 너무 소리 소문 없이 진행돼 안타깝다. 50년 연주생활 거인의 은퇴식이 그렇게 치러지다니…. 우리가 현존하는 빈티지(vintage·품위 있는 옛것)에 얼마나 인색한지를 보여 주는 풍경이다. 그러면서 외국에서 롤링 스톤스가 오면 난리가 난다. 지구 반대편의 빈티지에 부화뇌동하고 우리의 빈티지에는 인색한 거다.
영화에서 영월의 ‘이스트 리버’ 밴드 역을 연기한 노브레인이 주인공 최곤(박중훈)에게 “신중현의 대를 잇는 유일한 로커이신 최곤 선배님”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내 나름대로 록의 족보를 만들어 본 것이다. 한국 록 음악의 아버지가 신중현이라면 아마 전인권과 닮았을 최곤은 맏형쯤이며 노브레인은 그 맥을 잇는 막내라고 설정했다. 중반 이후 노브레인에게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게 한 것도 한국 록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거였다.
난 족보 없는 문화란 없다고 본다. 이 나라는 변화가 너무 빨라 그런지, 외세 침입에 의해 과거가 전복되어 버린 경험 탓인지 ‘선배에 대한 부정’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관습이 있다. 그러나 과거, 외부의 영향을 온전히 단절해 버린 상태에서의 ‘나’가 가능하기나 할까. 내가 받은 과거의 모든 영향, 내 안에 축적되어 온 관계, 그런 것들이 ‘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곧 내 안에 축적된 역사가 아닐까. 내게 필요한 건 ‘연대감’ ‘관계’이지 ‘차이의 부각’ 혹은 ‘과거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그래서 아예 영향, 족보, 그런 것들을 두드러지게 노출시키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게 ‘라디오 스타’다.
창작자로서 신중현에 대해 기질적 연대감도 느낀다. 신중현은 미군부대에서 음악을 배웠지만 미국 록 음악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만의 한국 록을 만들지 않았는가. 나도 ‘모델’이 없는 영화를 만든다.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는 그 이전의 어떤 외국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없다. 내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서의 동질성이랄까, 그런 연대감을 느낀다.
신중현은 음악적 테크닉도 훌륭하지만 기질이 더 멋있는 사람이다. ‘라디오 스타’에 신중현의 곡을 사용하기 위해 3월에 찾아가 뵌 적이 있다.
그때 신중현은 자신이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들려줬다. 중학교 때 영등포역 앞 악기점에 가서 제일 멋있어 보이는 바이올린을 샀는데 어떻게 소리를 나게 하는지를 당최 알 수가 없어서 기타로 바꿨다고 했다. 그게 그의 연주생활의 시작이었다.
고교 때는 클럽 연주자를 찾아가 막무가내로 오디션 봐 달라고 졸랐고 가르쳐 주겠다고 하자 그 이튿날 학교를 때려치웠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고민할 시간에 연습하고, 망설일 시간에 몸을 던져버리는 사람이다. 3월에 만났을 때도 스스로 실천한 인간의 파워가 눈빛에 그대로 드러났다. 정말 멋졌다.
그날 신중현에게 내가 “록은 뭡니까”하고 물었더니 “록은 정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신은 바로 “자유”라고…. 그 말씀이 잊혀지질 않는다.
내가 그날 신중현에게 한 약속이 있다. “10만 명쯤 모아 무료로 선생님의 공연을 하고 싶다. 무보수로 출연하실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무대가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년에 그걸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한강 둔치나 밤섬 같은 곳에서 해질 때 시작해 해뜰 때까지 로커들이 무보수로 출연해 무료로 온 관객들과 그냥 노는 거다. 그렇게 젊은이들에게 ‘족보 있는 록’의 진면모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
구술정리=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야기
이준익 감독은 4일 내년에 만들 영화 사전 준비 때문에 베트남에 간다.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묻자 “지금 자세하게 알려지면 안 되니까 노래로 설명하겠다”며 엉뚱하게 신중현의 노래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이야기를 꺼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중현의 노래를 탐험하다 아시아의 그늘에 들어가 보게 되는 거지. 지금까지 베트남전쟁을 다룬 영화는 미국의 전유물이다시피 했잖아. 난 그걸 아시아적 시각으로 재구성해 세계에 보여 주고 싶다고. 20세기에 미국이 만든 베트남전쟁 영화를 보면 총알이 미군 병사를 관통할 땐 아프지만 그 대상이 베트남 사람들일 땐 꼭 벌레 죽듯 그려놨잖아. 탈(脫)이데올로기 시대인 21세기엔 달라져야지.”
‘그건 그렇다 치고, 신중현의 노래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자 그는 “우리에게 베트남전쟁은 신중현의 노래를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면서 노래를 불러줬다.
“아, 잘 들어보라고. ‘말썽 많은 김 총각 모두 말을 했지만 의젓하게 훈장 달고 돌아온 김 상사∼’ 이렇게 나가잖아. 사고뭉치가 베트남 다녀와서 사람 됐다고 한단 말이야. 그렇게 믿고 싶은 거지.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 뒤쯤 터진 베트남전쟁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거든. 이 노래는 그런 걸 보여 준다고.”
그런 바탕에서 “베트남 가까이 보기가 사실은 한국 가까이 보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배경이 베트남이어도 사실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내가 언제 똑같은 영화 만드는 것 본 적 있어? 늘 예측 못 하는 방향으로 튀어왔듯이 이 영화도 그럴 거야.”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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