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토크]저가 와인 오래 묵히지 마세요

  • 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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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수집가 K 씨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몇 백만 원이 넘는 고가 와인을 수십 병 보유한 그는 애지중지하는 와인이 무사하기를 기도하며 와인셀러(와인냉장고) 문을 열었다.

‘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값비싼 보르도의 그랑 크뤼(특급) 와인은 모두 건재했고 ‘1865’란 와인 한 병만이 사라진 것이다. 며칠 뒤 도둑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단서를 제공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비싼 와인을 팝니다. 와인라벨에 적힌 생산년도가 오래될수록 비싼 건 알죠? 이 와인은 무려 150년이 다 되어 갑니다. 1865년도에 나온 와인이니까요. 이 와인을 저렴한 가격인 100만 원에 팝니다.”

도둑은 와인의 이름과 빈티지를 오해한 것이다. 도둑이 훔친 와인은 카베르네 쇼비뇽으로 만든 칠레산 레드 와인으로 그 이름이 ‘1865’다. 빈티지는 2002년이며 가격은 5만 원대.

도둑이 착각한 것처럼 와인 라벨에 적혀 있는 숫자를 ‘빈티지’라고 부른다.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의 수확연도를 뜻한다.

빈티지에 따라 와인이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빈티지 연도의 기후에 따라 포도 품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우박 등의 피해도 없었던 해에는 좋은 포도를 많이 거둘 수 있다. 이런 포도로 만든 와인은 ‘그레이트 빈티지’라고 불리며 품질도 훌륭하다.

프랑스 최대의 와인 산지인 보르도는 2003년 사망자가 속출할 정도로 무더웠다. 하지만 이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내심 흐뭇해했다. 카베르네 쇼비뇽은 더위에 잘 자라는 포도이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해 프랑스 2대 산지로 꼽히는 부르고뉴 와인 생산자들은 울상을 지었다. 주력 품종인 피노 누아가 더위에 약한 탓에 보르도와는 대조적으로 2003년 부르고뉴 와인은 ‘별로’라는 평가를 받아서다.

보르도의 대표적인 그레이트 빈티지로는 2000년과 1990년이 꼽힌다. 1997, 1999, 2002는 최악의 빈티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프랑스 보르도에 대한 기준이다. 나라별, 지역별 빈티지의 좋고 나쁨은 달라진다. 빈티지 차트를 이용하면 세계 와인의 빈티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잠깐!=빈티지가 오래됐다고 와인 맛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오크통에 숙성시킨 특급 와인은 오랫동안 보관하면 향과 맛이 깊어진다. 하지만 보졸레 누보같이 단기 숙성 와인은 기다리지 말고 빨리 마시는 게 바람직하다.

대개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고급 와인은 빈티지 5∼15년이 마시기 좋은 때다. 1만∼3만 원대 와인은 가능하면 최근 빈티지를 골라 바로 마시는 것이 현명하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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