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전통과 첨단유행 사이… 찬란한 ‘영국의 자존심’

  • 입력 2006년 10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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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통문화를 지켜 간다는 의미를 담은 버버리의 광고 캠페인. 영국을 대표하는 두 아이콘-영국 경찰과 모델 케이트 모스-의 만남이 눈길을 끈다. 사진 제공 버버리
영국의 전통문화를 지켜 간다는 의미를 담은 버버리의 광고 캠페인. 영국을 대표하는 두 아이콘-영국 경찰과 모델 케이트 모스-의 만남이 눈길을 끈다. 사진 제공 버버리
15일 영국 런던의 명품거리인 본드 스트리트.

샤넬, 루이비통, 아르마니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매장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다. 지갑이 얇은 배낭 여행객이라도 ‘꿈의 세계’에 들어온 듯 마냥 마음 설레는 곳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자존심이 상할 법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관광 거리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가 장악했으니.

“무슨 소리예요. 버버리가 있잖아요. 가다 보면 멀버리, 지미 추, 매퀸도 있고….”

쇼핑하러 왔다는 한 영국인. 기자의 질문에 역정을 내며 하얀 대리석으로 된 버버리 매장을 가리켰다. 그는 “누가 뭐래도 버버리는 영국의 자부심”이라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버버리는 한국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명품으로 통한다. 겨울이 되면 진짜든 가짜든 열 명에 한 명꼴로 버버리의 체크무늬 목도리를 두른다. 버버리의 체크무늬 가방은 명품 초보자가 무난하게 택하는 아이템으로 꼽힌다.

최근 버버리는 전통의 벽을 넘어서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체크무늬와 트렌치코트가 지금의 버버리를 있게 했지만 고정관념으로 굳어지면 앞으로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 바바리? 버버리!

1939년 9월 새벽 안개가 잔뜩 낀 영국 런던 워털루 다리. 영화 ‘애수’의 한 장면이다.

중년의 로버트 테일러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연인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쓸쓸한 표정의 테일러. 바람에 휘날리는 그의 ‘바바리’ 자락은 뭇 여성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영국 군복이었던 트렌치코트는 암울한 전쟁 분위기와 맞물려 고독의 대명사가 됐다.

바바리로 더 많이 알려진 트렌치코트는 1914년 버버리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용 외투 제작을 맡으면서 탄생했다. 트렌치(trench)는 군사용어로 ‘참호’라는 뜻.

트렌치코트는 ‘애수’ ‘카사블랑카’ 등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등장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856년 영국 햄프셔 지방의 작은 포목상회에서 출발한 버버리는 이렇게 해서 영국을 상징하는 패션하우스로 발돋움했다.

프랑스 패션은 장식이 많고 귀족적이다. 반면 영국 패션은 기능적인 고급 소재 중심으로 성장했다. 버버리의 성공도 창업자 토머스 버버리의 혁신적인 소재 개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농부와 양치기들의 리넨 작업복을 눈여겨 본 버버리는 1888년 특수 가공을 통해 통풍이 잘 되는 방수 천을 개발했다. 이게 바로 트렌치코트의 소재가 된 개버딘.

하루에도 여러 차례 비가 왔다 해가 떴다 하는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 덕에 개버딘의 수요는 날로 늘어 갔다. 특히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버버리의 개버딘 코트를 즐겨 입으면서 명품으로 인식되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에드워드 7세는 코트를 입을 때마다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버버리는 개버딘 코트의 대명사가 됐다.

트렌치코트의 세계적인 성공과 영국 전통 문양에서 영감을 얻은 체크무늬의 등장은 버버리를 세계적인 브랜드 반열에 올려 놓았다.

○ 진부함을 넘어서

런던 본드 스트리트에 있는 버버리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매장). 이 매장에 들어가면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버버리 표’ 정통 트렌치코트가 쉽게 눈에 안 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매장 내 대형 스크린이 런던이 아닌 밀라노 컬렉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런던에 사는 버버리 마니아 제인 워드(31·여) 씨는 “5년 전만 해도 버버리는 엄마나 할머니가 좋아하는 브랜드라 어쩌다 입으면 ‘엄마 옷 입고 왔느냐’는 핀잔을 들었다”며 “영국적이면서도 참신한 ‘버버리 프로섬’이 나오면서 팬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5월. 고리타분한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고심하던 버버리는 구찌와 도나 카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영입하고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을 내놓았다.

버버리 프로섬은 버버리 체크에서 벗어나 트렌디한 스타일이 특징. 런던이 아닌 밀라노 컬렉션에 소개한다. 기존 버버리 컬렉션은 베이직 아이콘을 기본으로 런던 컬렉션에 그대로 선보이고 있다.

전통을 상징하는 런던과 유행에 민감한 밀라노를 통해 버버리의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런던=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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