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한국 눈높이, 세계 눈높이까지 차오른다

  • 입력 2006년 10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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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학습지의 대명사인 대교는 최근 해외용 브랜드 ‘이노피’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눈높이 신화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 사진 제공 대교
국내 학습지의 대명사인 대교는 최근 해외용 브랜드 ‘이노피’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눈높이 신화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 사진 제공 대교
1975년 1월 21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허름한 교실.

한 20대 청년이 찬 바람에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학생 세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책상 몇 개와 칠판이 을씨년스럽게 들어선 비좁은 공간. 한국의 대표적인 학습지 브랜드 ‘대교’의 모태가 된 ‘종암교실’의 풍경이다.

강사로 나섰던 청년은 강영중(56) 대교그룹 회장. 그는 숙부의 권유로 일본 ‘구몬수학’과 연계한 학습 프로그램을 채택한 종암교실을 열었다. 1976년에는 ‘한국공문수학연구회’를 발족시킨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 단 3명의 회원으로 출발한 대교는 학습지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1991년 등장한 ‘눈높이’는 8월 기준으로 국내 최대인 22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눈높이의 주간 학습지 시장 점유율은 37.7%. 2005년 대교의 전체 매출 8155억 원 중 90%를 차지했다. 대교는 눈높이를 만들었고, 눈높이는 대교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 브랜드의 운명-위기와 기회

눈높이의 성공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그때 그 시절의 남루한 교육 환경을 들춰볼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 초등학교의 교육 환경은 열악했다. 한 학급에서 70∼80명이 수업을 받던 ‘콩나물 교실’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2부제 수업이 시행됐다. 교실 밖 공부는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 과외나 낱장으로 배달되는 ‘일일공부’가 전부였다.

선진적인 일본의 학습지와 학원 같은 공간을 이용한 소규모 ‘그룹과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입회비와 월회비는 각각 5000원 정도로 당시 살림 형편을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금액. 하지만 학생 수준에 맞춘 그룹식 수업이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종암교실 같은 공간이 20여 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순풍에 돛단 듯 성장하던 이 회사는 1980년 신군부의 ‘7·30과외금지조치’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학교 수업 이외의 교습을 받거나 교습을 하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 것.

당시 상황을 회고하는 박명규 교육마케팅본부장의 말.

“7·30조치에 대한 타개책으로 ‘아이들이 오지 못하면 우리가 가겠다’는 역발상을 했습니다. 교사가 학습지를 갖고 가정을 방문해 정부에서 말하는 과외가 아니라 학습을 도와주는 형태였지요. 하지만 가정방문은 쉽지 않았죠. 발은 부르트고, 여름에는 땀나고, 겨울에는 추웠습니다. 게다가 젊은 남성의 자존심에 집집마다 벨을 누르는 것은 큰 고역이었습니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1 대 1 방문학습시스템은 곧 자리를 잡았고, 1985년에는 회원이 6만 명을 넘어섰다.

○ 눈높이 브랜드 신화

눈높이 신화는 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 일본 구몬수학이 ‘공문’이라는 이름 대신 일본식 발음인 ‘구몬’을 사용하고 로열티도 인상하라고 요구한 것.

이에 회사 측은 공문이라는 ‘효자 브랜드’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1991년 상호를 ‘대교’로 바꾸고 새 브랜드로 눈높이를 선택했다.

눈높이의 단초는 1989년 TV CF에서 사용한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주세요’라는 슬로건이다. 광고대행사 직원이 ‘어린이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봐야 어린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키를 낮춘 선생님’ 사연을 전해준 것이 계기가 됐다.

성장 브랜드를 포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됐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실시한다는 브랜드 전략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눈높이는 대교의 믿음직한 ‘성장 엔진’이 됐다.

눈높이 교육의 출발점은 매일 학생들과 만나는 눈높이 교사였다. 집집마다 방문하는 학습지 시장의 특성상 눈높이 교사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좌우하기 마련이다.

류재한 마케팅전략팀장은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며 “양질의 콘텐츠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교사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1만4000여 명이 눈높이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 눈높이에서 이노피로

대교는 199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현지법인 ‘대교 아메리카’를 설립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초기 미국 내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눈높이 바람은 2000년대 들어 질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2002년 10월 해외용 제품 통합브랜드인 ‘이노피(E.nopi)’가 탄생한다. 눈높이의 국제용 버전이다. E는 3E(Eye Electronic Education), ‘nopi’는 높이의 영문 표기다.

‘이노피 한국어’는 2004년 캘리포니아 주 토랜스 교육구의 3개 초중등학교에 이어 지난해 뉴욕 소재 고등학교에서 정식 교과서로 채택됐다. ‘이노피 수학’도 캘리포니아 주 교육국의 승인을 받아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 업체가 만든 교육교재가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노피는 미국, 영국, 호주, 일본, 필리핀, 중국, 말레이시아 등 12개국에 진출해 있다. 한국 못지않게 교육열이 뜨거운 중국 시장에선 이노피의 중국명 브랜드인 ‘아이나오페이(愛腦培)’를 앞세워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브랜드 전략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역과 인종에 따라 아이들의 키 높이는 달라도, 마음의 눈높이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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