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이웃을 생각하는 봉사로…행복을 배달합니다

  • 입력 2006년 9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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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끄무레한 새벽,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여대생.

졸려 죽겠다는 표정이지만 친구가 살짝 옆구리를 찌르자 배시시 웃으며 표정을 가다듬는다.

끙끙대며 도시락을 싸 갖고는 어딘가 좁다란 골목길 계단을 열심히 뛰어오른다.

뒤 이어 흘러나오는 내레이션.

“나 같은 잠꾸러기가 무슨 봉사냐구요? 울 엄마도 포기할 만큼 아침잠이 많았는데 이젠 김밥만 한번 쭉∼ 말아도 신기하게 잠이 확 달아나요. 나도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몸과 마음을 모두 깨워주거든요.”

여기까지 들으면 머리에 딱 떠오르는 게 있다.

“아,이거 SK그룹 광고잖아.”

‘행복은 쉽다’는 메시지로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SK가 실시하는 무료 도시락 급식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담은 30초짜리 영상이다.

종합석유,화학기업과 무료 도시락이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SK그룹이 벌이는 각종 사회공헌 사업은 올해 이 회사가 정한 브랜드 이미지 전략의 주요 콘셉트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힘쓰는 ‘착한 기업’의 이미지를 브랜드 위에 살포시 올려 녹여 넣는다는 것.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는 기업의 사회공헌은 기업 브랜드에 인간미 가득한 색깔을 입히는 촉진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브랜드 그 자체가 되고 있다.

○ 착한 기업이 복 받는다

암울한 대공황에 시달리던 1930년대 미국. 거리엔 가난한 사람이 넘쳤고 기업들은 파산했다. 어려운 이웃에게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이런 와중에 한 조그만 업체가 시리얼(cereal)을 극빈층에게 무상으로 배급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이들의 부족한 영양분을 채워 줬던 시리얼은 이후 미국인에게 ‘거뜬한 한 끼’로 각인된다. 먹기 쉽고 영양까지 갖춘 현대인의 아침식사, 세계적인 시리얼 브랜드 ‘켈로그’는 이렇게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보디숍은 또 어떤가. 영국의 스킨케어제품 업체인 보디숍은 제품 자체가 그렇게 차별화되지는 않는다. 값비싼 럭셔리 제품으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잘 팔린다. 왠지 품격 있고 호감 가는 브랜드라는 반응이 많다.

이 회사가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을 줄기차게 벌이면서 동물 사랑 이미지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또 동물에게서 추출하는 사향을 쓰지 않고 인공적으로 합성한 사향을 원료로 사용한다. 캠페인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보디숍은 자연스러운 홍보효과까지 보게 된 셈이다.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의 저자 필립 코틀러는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하는 기업일수록 판매율과 시장점유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수치를 통해 입증했다. 이런 기업들은 투자매력도와 위험회피율이 높았고,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매력도도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높았다.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숲 가꾸기 운동을 전개해 온 유한킴벌리의 사례가 꼽힌다. 이 회사는 개발지상주의가 지배하던 1984년, 개념조차 희박한 환경사업에 뛰어들어 20년 이상 일관되게 캠페인을 벌였다.

23년째인 ‘신혼부부 나무심기’는 3400만 그루의 나무를 키워 냈다. 여고생과 함께하는 ‘숲 체험 여름학교’는 1988년에 시작돼 20년을 향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이제 그 이름만으로 푸른 나무가 연상되는 친환경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 기업의 사회공헌, 바람직한 모델은

“기업이 사회 구성원이라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들만 잘 먹고 잘사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경계할 필요가 있고요. 일부에서는 세금감면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별로 많지 않은 금액이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SK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점점 활발해지는 추세가 뚜렷하다.

기업들이 지출한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임직원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결식아동과 무의탁 노인 등 소외계층을 상대로 한 봉사활동이 활성화된 것도 바람직한 현상으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많은 기업이 동남아시아의 지진해일(쓰나미) 피해지역과 미국 카트리나 피해지역 등 해외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섰다. 기업 임직원이 사진촬영을 위해 얼굴 한번 내미는 ‘반짝 이벤트’ 봉사활동은 극복해야 할 1순위. 획기적인 이벤트를 찾는 데 혈안이 되다 보니 막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실해 질 수 있다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얼마’보다는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하느냐도 중요하다. 최근 일부 기업이 거액을 내놓았지만 해당 기업의 속사정과 겹쳐 사회 일각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사회공헌 컨설팅업체인 라임글로브 관계자는 “따라하기식 프로그램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며 “장학사업을 할 경우 현금 지급 외에 정서 지원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식으로 사회공헌의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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