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브랜드]CI, 눈과 마음 빨아들이는 블랙홀

  • 입력 2006년 9월 18일 02시 56분


코멘트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란 옛날 유행가 가사를 요즘 기업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답은 ‘기업은 얼굴이 예뻐야 실속도 있다’가 되지 않을까.

기업들이 CI(Corporate Identity) 교체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최대 특수(特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당시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CI를 정비했다면 요즘의 CI 교체 붐은 ‘제2의 도약’을 위한 투자라는 측면이 강하다.

수십 년 된 장수 기업의 산뜻한 이미지 변신을 위해, 혹은 계열 분리에 따른 새로운 기업 이미지 구축을 위해 ‘기업의 얼굴’인 CI를 바꾼다.

CI혁명…이미지가 미래를 바꾼다
특집기사목록

▶ 변치 않는 맛의 전설이 되리라

▶ 잘 지은 이름, 중국 고객 사로잡다

▶ “치밀한 마케팅, 명품의 조건이죠”

▶ 한번 가본 그 숍, 자꾸만 가고싶네

▶ 파브가 보여주는 비전… 거대한 프리미엄 세계

▶ “당신의 시간은 예술입니다”…바셰론 콘스탄틴

CI 전문가들은 “기업의 이미지 변신은 명백한 무죄”라고 강조한다.

외형적 규모로 기업을 평가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이미지가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CI의 역할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문자체 일변도에서 벗어나 한 단계 진화한 도형 모양의 아이콘을 비롯해 다양한 색채와 글꼴로 만들어진 감성적 CI들이 소비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CI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단순히 기업 실적에 집착하기보다는 행복 희망 환경친화 미래경영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는 추세다.

넘쳐나는 제품과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과 강력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기업들에 사람의 얼굴 성형과 같은 CI 교체 작업은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브랜드 전략일지도 모른다.》

○ 성공적인 CI, 기업을 키운다

지난해 3월 출범한 GS그룹은 주황 초록 파랑 등의 색상이 강렬하게 조합된 새 CI의 덕을 톡톡히 봤다.

전국 3400여 개의 GS칼텍스 주유소, 2100여 개의 GS25 편의점, 150곳 이상의 GS건설 현장에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CI 통합 작업은 LG그룹에서 분리된 GS의 존재를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은주 GS홀딩스 홍보팀 부장은 “CI를 바꾼 지 1년 6개월 만에 소비자들이 GS를 확실히 알게 됐다”면서 “최근 실시한 소비자 인지도 조사에서 99%의 고무적인 인지율이 나왔다”고 전했다.

LG홈쇼핑의 이미지가 강했던 GS홈쇼핑은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의 공동 마케팅과 CI 통합 작업을 통해 지난해 매출액 5456억 원, 영업이익 760억 원의 탄탄한 실적을 냈다. 새롭게 단장된 CI가 회사명 변경에 따른 소비자 혼란을 빠르게 불식시킨 것이다.

얼굴을 곱게 단장하면 마음가짐도 정갈하게 고쳐 잡는 게 인지상정. 기업도 마찬가지다. GS홈쇼핑은 CI 교체를 전사(全社)적 혁신의 계기로 삼았다. 반품 및 환불 과정 개선, 고객 중심의 상품정보 전달, 콜 응답률 향상 등 10여 개 주제를 정해 혁신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행복 날개’라는 CI를 발표한 SK그룹은 요즘 재계에서 “행복 날개 덕분인지 우환 없이 행복한 기업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각종 악재에 시달린 삼성, 현대차 등 다른 주요 그룹과 달리 좋은 실적과 함께 평탄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

SK그룹은 초등학교 결식아동과 혼혈아동 등 사회 소외계층을 돕는 사회공헌 활동에 ‘행복 날개’ 이름을 붙여 꿈과 희망의 기업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 CI를 바꾸면 기업이 젊어진다

6월에 바뀐 진로의 CI는 과거의 두꺼비 아이콘을 유지하되 한결 젊어졌다. 복잡한 문양의 흑백 색상에서 간결한 문양과 세련된 푸른 색상으로 바뀐 것.

진로 측은 “기존 CI는 82년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의 높은 소비자 인지도에 비해 보수적 느낌이 강한 데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에 진부한 디자인이어서 CI를 교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24년 평남 용강에서 소주 제조업을 시작한 진로의 첫 CI는 원숭이였다. 북한에서는 원숭이를 복을 주는 영특한 동물로 여기기 때문.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1954년 서울에 터를 잡은 이 회사는 남한에서 복을 주는 동물로 통하는 두꺼비로 CI를 교체했다. 이렇듯 CI에는 한 기업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60년 설립된 장수 문구기업 모나미는 12일 새 CI를 발표하면서 대형 할인점과 24시간 편의점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지닌 사무용품 유통서비스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푸른색으로 딱딱했던 영문 글씨체는 둥글둥글한 빨간색 글씨체로 바뀌었다. 마지막 영문인 ‘i’의 동그라미를 경쾌하게 표현해 ‘즐거운 변화’ 콘셉트를 담아냈다.

7월 신무림제지에서 회사명을 바꾼 무림페이퍼도 미래를 잇는 다리를 형상화한 CI로 딱딱한 굴뚝산업 인상이 강한 제지업체의 이미지를 벗겨냈다.

안상철 무림페이퍼 홍보팀장은 “전에는 젊은 직원들이 회사 배지 달기를 꺼렸는데 요즘은 자발적으로 달면서 회사 분위기도 밝아졌다”고 소개했다.

○ 감성과 미래를 담는다

올 2월 세상에 선보인 금호아시아나의 새 CI는 재계 뿐 아니라 디자인업계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빨간색 꺾쇠 모양의 CI는 ‘단순한 것이 가장 강렬하다’란 메시지를 실증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장성지 금호아시아나 홍보팀 상무는 “새 CI에는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 조예가 깊은 박삼구 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CI가 채택되려면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빨강 노랑 등 활기찬 색상들로 꾸며진 삼양그룹의 CI,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주황색 받침으로 형상화해 턱을 괴고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 샘표의 CI, LIG손해보험의 ‘희망 구름’ CI 등은 따뜻한 감성을 추구한 CI들이다.

또 영국의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가 디자인한 한국타이어의 CI, 우상향 화살표가 주가 상승을 의미하는 키움닷컴의 CI는 미래지향적 CI로 꼽힌다.

LIG손해보험 CI 작업을 맡았던 디자인파크의 손근민 실장은 “갈수록 이런저런 브랜드가 넘쳐나기 때문에 앞으로의 CI는 복잡하지 않은 분명한 이미지를 추구하게 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CI를 노출시키고 관리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