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The Simpsons Movie’

  • 입력 2007년 10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심슨 가족’은 미국 방송사상 가장 장수한 만화입니다.

1989년 첫 방송을 시작해 무려 18년에 걸쳐 18개 시즌, 총 400개의 에피소드가 방영되었죠.

올해 개봉된 ‘심슨 가족, 더 무비(The Simpsons Movie)’는 새로운 내용의 에피소드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겁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보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만듭니다.

난폭한 쥐가 고양이를 혼내 주는 내용의 만화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있던 심슨.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외칩니다. “에이, 텔레비전에서 공짜로 다 해 주는 이런 만화를 극장에서 돈 내고 볼 사람이 어디 있어!”

심슨의 말은 알고 보면 자기 스스로를 비꼬고 있습니다. 》

▶easynonsul.com에 동영상 강의

투명 돔속 오염된 마을은 이라크이자 미국사회의 자화상

20년 가까이 TV에서 ‘공짜로’ 방영되었던 만화 ‘심슨 가족’. 이걸 극장용으로 만든다 한들 도대체 누가 돈을 내고 볼 것이냐는 말이지요(하지만 심슨의 우려와 달리 이 영화는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렇게 ‘심슨 가족, 더 무비’는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삼을 만큼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1】스토리라인

평화로운 마을 스프링필드. 그러나 마을 호수는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와 각종 오염물질로 썩어 들어갑니다. 돼지를 키우던 심슨은 어느 날 엄청난 양의 돼지 똥을 호수에 무단 방류합니다. 그때부터 호수에선 돌연변이 물고기와 개구리가 속출하죠.

이에 환경보호국장인 ‘러스 카질’은 무시무시한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어떤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거대한 투명 돔을 오염된 스프링필드 마을에 씌워버린 것이죠. 마을을 고립시킨 그는 아예 마을 전체를 폭파시켜 지도상에서 없애 버리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한편 광분한 마을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일으킨 주범인 심슨의 집으로 달려가고, 심슨 가족은 사람들을 피해 저 멀리 알래스카로 도망갑니다. 하지만 정든 마을 스프링필드를 단 하루라도 잊을 수가 있을까요. 결국 심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스프링필드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뭘까요? 물론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영화 속엔 미국에 관한 조롱에 가까운 풍자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스프링필드 마을을 뒤덮은 거대한 투명 돔을 보세요. 이 돔은 일차적으론 ‘온실효과’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돔에 의해 외부와 차단된 마을 사람들은 점차 더위와 갑갑증을 느끼면서 피폐해져 갑니다. 이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두터운 층을 이루며 지구를 감싸는 바람에 지구의 온도가 매년 상승하는 온실효과를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투명 돔에서 정치적인 함의(含意·숨은 뜻)를 읽어내는 작업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영화 속 정부는 스프링필드 마을의 오염된 환경을 개선하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다짜고짜 마을에 돔을 씌워 외부와 격리시킨 뒤 강력한 폭탄을 터뜨리죠.

이 장면은 미국이 벌인 이라크전쟁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내에 대량 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면서 이라크를 고립시키고 급기야는 폭탄을 퍼붓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결국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죠. 다시 말해, 돔으로 외부와 단절돼 결국 고사(枯死) 직전까지 가는 스프링필드 마을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뒤 미국의 침공을 받은 이라크에 대한 은유였던 것입니다.

거대한 투명 돔의 제작사가 알고 보니 환경보호국장 소유의 회사였음이 드러나는 대목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보호국장은 투명 돔을 마을에 씌움으로써 스스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데요. 바로 이 장면은 미국 정부 당국자들과 긴밀한 연관을 맺은 군수회사들이 이라크전쟁에 쓰일 전쟁물자를 대주고 엄청난 이득을 챙긴 사실을 매섭게 풍자하는 대목이죠.

게다가 아무런 지식도 판단력도 없이 그저 환경보호국장의 (협박에 가까운) 제안에 따라 중요한 정책 결정을 허수아비처럼 내리는 영화 속 대통령의 모습은 미국의 무능한 리더십을 비꼬고 있습니다.

투명 돔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돔이 씌워진 스프링필드 마을을 ‘현재 미국 사회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투명 돔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의해 외부와 고립된 스프링필드. 이 마을의 모습에는 9·11 테러 이후 한층 더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미국, 그리고 미국민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투명 돔은 결국 미국민들을 보이지 않게 억압하고 또 외부세계와 단절시키는 국가의 각종 규제와 통제, 바로 이것에 대한 은유라고도 볼 수 있지요.

돔에 갇혀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면서 불안 속에 사는 스프링필드 주민들의 모습은 ‘또 다른 테러’를 근심하며 신경쇠약 직전까지 다다른 미국사회의 자화상입니다. 마을을 구하러 가는 심슨 가족을 정부 요원들이 각종 도·감청 장비를 총동원해 감시하는 영화 속 장면이야말로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국민에 대한 감시를 늘려가는 미국 정부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던 것이지요.

아, 86분짜리 만화영화 한편에 이토록 지독한 풍자와 깊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니…. 정말 만화는 ‘손’으로만 그리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