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책여행]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4)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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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주어진 것인가? 아니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가?

이 우주는 새로움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결정론적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신(神)이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인가?

“상식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선행된 다른 사건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시 또 상식에 따르면 인간은 가능한 여러 행동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카를 포퍼)

결정론은 합리적인 사상의 여명기였던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상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이 결정론적인 세상에서 인간의 창조성과 윤리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벨기에의 과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은 역저 ‘확실성의 종말’(사이언스북스·1997년)에서 여기에 서양 인문주의적 전통의 뿌리 깊은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로는 자연을 명백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이룩하기 위해 개인의 책임과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결정론의 딜레마’(윌리엄 제임스)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

“확실성과 결정론의 추구는 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우리 실존의 바탕을 부인하는 소외에 이르고 말았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과학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우리는 지금 우주론에서 생물학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불안정성과 요동을 경험하고 있다.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법칙’뿐만 아니라 ‘사건’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확고하다고 믿었던 세상의 상당부분은 “과학적 그물을 빠져나갔다”.(화이트 헤드)

프리고진은 “이제 더는 과학이 확실성을 의미할 필요가 없는 새로운 과학이 태어나고 있는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그러나 그는 확실성의 종말이 결코 인간 정신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시간의 실체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뉴턴의 자연법칙은 시간의 방향성을 부정한다. 미래와 과거를 구별하지 않는 뉴턴의 우주는 ‘시간 대칭적인’ 우주다. 미래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등가적(等價的)인 결정론적 우주다. 결정론적 자연법칙에 따르면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완벽한 ‘초기 조건’이 주어지면 과거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시간의 흐름은 우리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화살’이야말로 자연의 기본법칙으로부터 나타나는 고유한 성질이라는 것. “시간의 화살이 존재하지 않는 평형 상태의 물질은 눈이 먼 상태다. 시간의 방향성이 주어질 때 물질은 비로소 눈을 뜨고 앞을 보게 된다.”

시간과 존재는 어쩔 수 없이 뒤엉켜 있으며 시간의 진화가 없으면 ‘빅뱅’도, 생명의 탄생도 없는 것이다.

“시간은 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나와 함께 흘러가는 강이지만 나 자신이 바로 그 강이다. 그것은 나를 잡아먹는 호랑이지만 내가 바로 그 호랑이다. 그것은 나를 태워 버리는 불이지만 나 자신이 바로 그 불이다….”(보르헤스)

현대물리학은 그 ‘지식의 경계’에서 공간보다는 시간, 존재보다는 ‘됨’, 질서보다는 카오스로 무게중심을 옮겨 가면서 동양의 고대사상과 접점을 넓혀 가고 있는 듯하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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