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88>觀 察(관찰)

  • 입력 2003년 6월 29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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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 察(관찰)

觀-볼 관 察-살필 찰 節-마디 절

按-누를 안 伯-맏이 백 任-맡길 임

漢字도 다이어트를 한다. 그 결과 오랜 기간이 지나면서 書藝(서예)라고 하는 세계 유일의 문자예술이 나오게 된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한자는 모두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을 한 결과다.

觀은 본디 관(황새 관)에 見(볼 견)자가 합쳐졌던 모습이었는데 너무 뚱뚱했으므로 鳥(새 조)자를 살짝 다이어트 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觀의 본뜻은 ‘황새가 먹잇감을 노려본다’가 되는데 지금은 단순히 ‘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觀察이라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잘 살펴본다는 의미지만 본디 觀察의 대상은 사람이었다. 곧 백성들의 움직임이나 관리들의 行態(행태)를 면밀하게 觀察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관리들이 제대로 다스리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중국 大唐帝國(대당제국)의 판도는 漢(한)나라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동서 9500리, 남북 1만 7000리에 동으로는 우리의 동해에서 서로는 파미르 고원까지, 그리고 남으로는 멀리 베트남에서 북은 바이칼호까지 뻗쳤다.

이렇게 넓은 지역을 다스리다 보니 관리들에 대한 철저한 감독, 감시가 필요했다. 곧 그들을 ‘觀察’할 필요가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그들을 감독할 수 있는 관리를 파견하여 수시로 정보를 보고토록 함으로써 인사의 자료로 삼았는데 그것이 觀察使(관찰사)였다. 후에 오면 節度使(절도사)가 겸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 觀察使를 활발하게 운용했었다. 고려의 職制(직제)를 계승한 것으로 본디 按察使(안찰사) 또는 按廉使(안렴사)라고 했던 것을 世祖(세조·1455∼1468) 때 觀察使로 改稱(개칭)했다. 전국을 8道로 나누고 觀察使를 두었던 것이다. 일명 監司(감사), 道伯(도백), 方伯(방백)이라고도 불렀다. 기능은 대체로 중국과 비슷했는데 본연의 임무가 국왕의 특명을 받아 휘하의 지방관들을 ‘觀察’하여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 보고에 따라 조정에서는 任免(임면)을 행사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선발도 매우 엄격했다.

또 하나는 지방행정의 長으로서 도내의 모든 민사, 군사를 장악하고 처리하는 것이었다.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져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때로는 兵馬節度使(병마절도사)나 水軍節度使(수군절도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본 職制는 조선의 중앙집권적인 통치에 크게 기여했는데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폐지되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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