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찬란한 여름밤 20선]<20>콘택트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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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문명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수십억 개의 세계 모두가 다만 황무지일 뿐, 생명체를 품고 있지 않단 말인가? 이 외진 한구석 지구에만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수긍할 수 없는 억지였다.”―본문 중에서》

미국 코넬대의 천문학과는 해마다 ‘비판적 사고’라는 다소 생뚱맞은 과목을 개설한다. 지금은 이 학교 고학년은 누구나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이 됐지만 초기(1994∼96년)에는 전혀 달랐다. ‘수천 년 후에 인간은 어느 행성에서 살게 될지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논하시오’라는 질문 등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을 해야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담당 교수는 20명의 학생을 직접 선발했는데 수강생은 수십 대 1의 문턱을 넘은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왜냐하면 그 수업의 담당교수가 다름 아닌 칼 세이건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면 천문학자 세이건만큼 대통령을 여러 번 했을 인물도 드물 것이다. 생전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으로 불렸다.

세이건은 천문학계에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프로젝트와 ‘외계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선물한 주인공이며, 대중에게는 친절하고 해박한 ‘우주의 대변자’요, ‘과학의 해설자’였다. 그가 만든 TV 시리즈 ‘코스모스’는 60여 개국의 6억 명 이상이 시청한 과학 다큐멘터리 분야의 전설이다. ‘과학의 대중화’는 그가 원조인 셈이다.

‘콘택트’(1985년)는 세이건이 쓴 공상과학 소설이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동명 영화(1997년)의 원작이기도 한 ‘콘택트’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쟁점들이 등장인물의 언행과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외계 지성체 탐사에 헌신한 젊은 여성 천문학자가 어느 날 외계로부터 온 신호를 해독한다. 정부는 그 해독된 설계도대로 직녀성에 갈 수 있는 운반체를 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그 운반체를 타고 웜홀을 지나 베가성에 도착했으나 자신의 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난 외계인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경험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 마치 신을 경험한 신앙인이 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처럼.

소설이 이 정도에서 끝난다면 세이건을 아는 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서양의 인격신 개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며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물질로 가득한 우주가 신 없이도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줄기차게 설파해 온 이 시대 최고의 회의주의자 아닌가. 실제로 그는 직녀성에 다녀온 증거를 확보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을 통해 과학자의 열정과 호기심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역설한다.

최근 책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를 거침없이 도발하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도 이런 측면에서는 세이건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콘택트’는 그와 달리 신앙인들에게 찬바람을 불어넣지는 않는다. 그 대신 혹시 한여름에 거추장스러운 옷을 껴입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든다. 이 때문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독자들은 세이건의 분신인 애로웨이 박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신앙인마저도.

장대익 서울대 과학문화 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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