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전율,추리소설 20선]<11>모방범

  • 입력 2007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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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아이만은 지켜주고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불행이 닥쳐와도. 하느님, 그런 힘을 제게 주세요.”

범죄자들은 대개 욕망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과거에는 재물 애정 명예 질투 등 단순한 욕망에 가까웠지만 언제인가부터 그 욕망은 더욱 복잡해졌고 심지어 범죄 자체를 즐기며 과시하는 범죄자가 나타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어떤 사람이 남의 인생을 쉽사리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일본의 인기 작가이자 우리나라에도 고정 독자들을 확보한 미야베 미유키.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모방범’은 이런 쾌락형 범죄자의 범행을 다루고 있다.

도쿄의 공원 쓰레기통에서 여자의 오른쪽 팔과 핸드백이 발견된다. 핸드백과 오른팔은 서로 다른 사람의 것이다. 이어 핸드백 주인인 실종된 젊은 여성의 가족에게, 그리고 TV 방송국에 범인의 전화가 걸려 온다. 이유 없는 살인극을 벌이고 매스컴을 이용해 범죄를 과시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쾌감을 느끼는 범인…. 살인사건은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의 인생마저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각각 500쪽이 넘는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부에선 이유 없는 폭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과 분노, 죄의식까지 느끼게 되는 피해자의 가족들, 2부에선 매우 영리하지만 제멋대로인 논리와 유치한 특권 의식을 가진 범인의 시점으로 잔혹한 범행이 묘사된다. 그리고 3부에서는 잠깐 멈춘 듯했던 사건이 다시 시작되어 긴박하게 전개된다.

‘모방범’에서는 천재적 명탐정이나 기발한 트릭 같은 것을 볼 수 없으며 연쇄살인범은 일찌감치 독자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주목해야 할 점은 범인을 잡는 데에만 집중했던 대부분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피해자의 고통과 가족의 쓰라린 슬픔을 정면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강한 면과 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마주쳤을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야만 한다. 피해자의 할아버지 아리마 노인과 범행의 첫 발견자이자 자신도 강도에게 온 가족을 잃은 신이치는 사건 해결에 힘을 쏟는다. 미성숙한 자아를 지닌 절대악(絶對惡)의 존재도 무서운 일이지만, 작품의 저변에는 비극적인 사건마저도 대중의 흥미와 소비 대상이 되어 버리는 현대 사회의 위험한 모습이 깔려 있다. 그것이 소설 속의 일이나 외국의 일이라고 넘겨 버리기 어려울 만큼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결말 부분에 나오는 ‘이 아이만은 꼭 지켜주고 싶다’는 한 어머니의 결심은 더욱 뼈저리게 마음에 와 닿는다.

박광규 한국추리 작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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