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6>러셀 자서전

  • 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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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 이 열정들이 바람처럼 나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한 사람의 자서전이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문화적 사상적 지형도가 되는 드문 일이 있다. 철학자, 수학자, 문필가, 반전운동가, 백작, 노벨 문학상 수상자, 대안 교육가, 여권 신장 운동가 등 하이브리드의 삶을 산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이 바로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케임브리지 시절, 학문적 활동기, 활발한 사회 활동기 등으로 이어지는 이 자서전에서 단연 흥미로운 대목은 문화계와 사상계 저명인들과의 교유다.

철학자 조지 무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앨프리드 화이트헤드, 경제학자 존 케인스, 소설가 데이비드 로렌스, 조지프 콘래드(러셀은 아들 이름을 콘래드로 지었다. ‘내가 늘 가치를 발견하는 이름’이라는 게 이유였다), 사회운동가 시드니 웨브 부부, 시인 T S 엘리엇,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밤중 러셀의 집으로 찾아와 서재에서 불안스럽게 서성거리는 비트겐슈타인을 향해 던진 러셀의 질문. “자네는 지금 논리학을 생각하나? 인간의 죄를 생각하나?” 비트겐슈타인의 대답인즉, “둘 다입니다.”

러셀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그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국가나 타인이 간섭할 수 없다는 원칙에 철저했다. 포르노그래피에 가까운 시를 쓴 어느 젊은 시인을 영국 경찰이 구속하자, 러셀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시인을 석방시키려 했다. 시인이 시 때문에 구속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결국 시인은 러셀의 노력으로 석방됐지만, 러셀은 문제의 시를 읽어보고 매우 역겹게 느꼈다. 그러나 러셀은 이렇게 말한다. ‘시가 아무리 역겹더라도, 그것이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끼친다고 할 수는 없다.’

자서전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들 가운데 하나가 그 솔직함이라고 볼 때, 러셀의 자서전은 최고급의 자서전이다. 청소년 시절 러셀은 하녀를 유인하여 키스와 포옹을 하고 ‘나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하녀는 러셀의 제의를 거부하면서 ‘당신이 훌륭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러셀은 자신의 약점으로 비칠 소지가 있는 행적이나 심경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밝힌다.

중국과 러시아 방문 경험에도 비교적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중국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면 소비에트 체제가 막 들어서고 있던 러시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특히 당시 중국 베이징대의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러셀은 그들의 열정과 헌신에서 중국의 미래를 보았던 것이다.

러셀의 자서전은 자서전 문화에 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시시비비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 두루뭉술한 자서전,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은 슬쩍 넘어가는 자서전,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자서전. 이것이 그동안의 우리 자서전 문화가 아닌가 하는 자성을 해보는 것이다. 러셀 자서전은 우리에게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사연 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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