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전막후]피아노 못치면 무대 못선다?

  • 입력 2008년 6월 5일 03시 03분


연극 ‘환상동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주인공 한스(이현배 씨).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연극 ‘환상동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주인공 한스(이현배 씨).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그의 긴 손가락이 낡은 건반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자 객석에는 “아∼” 하는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연극 ‘환상동화’의 중반, 전쟁에 나갔다 청각을 잃고 돌아온 주인공 한스가 부드럽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 ‘반전(反戰)’과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의 백미다.

지난해 매진을 기록했던 이 작품을 다시 올린 이다엔터테인먼트는 올해 한스 역 오디션을 실시하면서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스 역엔 연극배우치고는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지닌 이현배 씨가 캐스팅됐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측은 “한스 역은 피아노 연주 장면에서 강한 인상을 줘야하기 때문에 연기나 외모보다 피아노 실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대학로엔 뮤지션 수요가 부쩍 늘었다.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된 테너와 그를 대신해 무대에 선 조수의 해프닝을 코믹하게 다룬 뮤지컬 ‘테너를 빌려줘’에는 성악가 출신이 대거 캐스팅됐다. 조수 막스 역의 윤영석 씨는 추계예술대 성악과 출신의 오페라 가수. 강상범 씨는 독일 쾰른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테너 티토 역의 최윤호 씨는 독일 카셀국립음대에서 오페라 콘체르트 과정 대학원을 졸업하고 카셀국립극장에서 정단원을 지냈다.

‘테너를 빌려줘’의 기획사인 아츠플레이는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이나 푸치니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 실제 오페라 아리아가 사용되기 때문에 주인공 역은 성악가 출신으로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으로 수출된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도 하이라이트인 동욱 동현 형제의 피아노 합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제작사인 엠뮤지컬은 “피아노 실력을 갖췄으면 좋겠지만 이를 충족하는 배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한 달 정도 피아노를 집중 연마시켰다”고 말했다.

뮤지션 선호는 여성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정희정 대리의 말.

“젊은 여성들이 갖는 판타지 중 하나가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연주를 잘하는 배우를 무대에 올리면 공연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20, 30대 여성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일석이조인 셈이죠.”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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