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관행, 제약업계 발전에 발목

  • 입력 2009년 9월 23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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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약업계는 구조적으로 신종플루와 같은 새로운 질병에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미국계 제약회사 '호스피라'의 팀 올드햄 아시아 태평양 지역 사장(사진)은 "제약 업계 경영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청렴성과 도덕성"이라며 "한국 제약 업계는 그동안 이 두 요소가 부족해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호스피라는 생명공학 기법으로 제조한 항암제, 진통제 등 각종 의약품과 항암제와 같이 세밀하게 투여량을 조절해야 하는 약물용 첨단 주사약 투입기 등을 제조하는 회사.

임직원 1만4000여명과 연 매출 5조원 규모로 그동안 국내 기업을 통해 제품을 공급해 왔으나 최근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직접 유통에 나섰다.

올드햄 사장은 "한국 의약품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리베이트 관행"이라며 "한국 제약사들은 높은 기술 수준에도 불구하고 당장 국내 영업에서 성과를 올리기 위해 투명하지 못한 방법들을 동원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왔다"고 주장했다.

멀리 내다보고 신약을 개발하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당장 '팔린다'는 약품을 만들어 판매고를 올리는데 급급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신종플루와 같은 새로운 질병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이유 중 하나도 소모적 경쟁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그동안 특허를 인정받아온 약품들이 5, 6년 뒤 대거 특허가 만료된다"며 "이는 제약 시장이 새로운 형태의 경쟁체제에 돌입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허가 만료되면 특허료를 내지 않고 어느 업체나 같은 성분의 약품을 만들어 팔 수 있다. 특허권을 보호받던 제약회사의 기득권은 사라지고 같은 성분의 약을 놓고 품질과 가격, 유통 속도, 편의성 등을 놓고 업체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는 것.

게다가 자유무역협정(FTA)이 보편화 하면 국내 제약시장도 무방비로 해외에 노출돼 한국 기업들도 세계적 제약업체와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리베이트 관행 속에서 체력을 소모해온 한국 제약업체들은 이 같은 경쟁에 취약하다는 게 올드햄 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그러나 한국 제약 시장도 성숙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특히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며 "이 같은 분위기가 탐지됐기 때문에 한국 지사 설립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해 지면 상대적으로 혜택은 환자들이 입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

"상당 수 항암제와 진통제 등의 특허가 만료되면 특허권료 등의 비용이 줄고, 업체들 간의 가격경쟁도 벌어져 지금보다 20~30% 약 값이 떨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환자들에게 혜택이 지속되도록 제약 업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업체들의 노하우를 전수 받는 것도 중요하다"며 "호스피라는 국내 병원 업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관계를 맺어 한국 제약 시장에도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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